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서양 흡혈귀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드라큘라(Dracula)’를 꼽을 수 있다.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영화와 TV 시리즈가 대략 560개가 넘는다고 한다. 모티브가 되는 원작 소설은 1897년 영국의 ‘브램 스토커’가 썼다. 소설은 서간체 문장으로 지루하고 내용이 방대하다. 영화에서는 주변 이야기를 생략하고 인물의 특성만 가지고 왔다. 

서양의 이중인격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지킬(Dr Jekyll)’이다. 지킬의 또 다른 인격은 하이드(Hyde)다. 이들 역시 영화와 TV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다. 원작은 1886년 영국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단편소설이다. ‘지킬 앤 하이드’는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었는데,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내용도 원작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서양 공포의 또 다른 대표적 캐릭터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다. 드라큘라와 버금갈 정도의 영화와 TV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모티브는 1818년 영국의 소설가인 ‘메리 셸리’가 쓴 소설이다. 그녀는 여성이기에 처음에는 무명으로 출판했다가 소설 출간 10여 년 후인 1831년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재출간했다. 

놀랍게도 이들 대표적인 공포 캐릭터에 대해 서구인들은 열광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일단 우리에겐 다른 캐릭터가 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구미호다. 구미호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라는 뜻으로 인간으로 변하여 간을 파먹는 동물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던 구미호는 1994년이 되어서야 《구미호》라는 제목의 영화로 등장한다.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또 다른 캐릭터는 ‘소복 입은 여인’이다. 머리는 산발하고 하얀 의상을 입고 있으며 간혹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리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도 옛날부터 구전되어온 존재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원한을 갖고 있어 여전히 이승을 떠도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민담을 이인직이 1906년에 《귀(鬼)의 성(聲)》이란 소설로 각색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무서운 캐릭터는 보이지 않는 ‘귀신’이다. 사람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어깨에 붙어있기도 하며, 등에 업혀 다니기도 한다. 귀신은 무녀나 사람 심지어 동물 속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이 귀신 역시 사람이었다가 죽어서 한을 품고 있는 존재이다. 

신기한 것은 서구 공포 캐릭터는 주로 남성이고 한국의 경우에는 주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또한, 서구의 캐릭터가 어떤 개인이 자발적으로 무슨 일을 저지르다가 이상하게 돌변한 존재라면, 한국의 캐릭터는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존재로서 외부에서 가해오는 어떤 작용 때문에 억울함을 갖게 되어 그것을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 

근래에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에 있는 ‘좀비’가 등장했다. 서구인에서 더욱 인기 있는(?) 좀비는 흑백영화 《화이트 좀비》(1932)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캐릭터로서 좀비는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통해 드러난다. 한편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는 《괴시(怪屍)》(1980)지만 자기 면모를 제대로 드러낸 것은 《부산행》(20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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