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 변희일

현재 우리의 농촌은 고령화·과소화가 심화하고 있으며 특히나 청년세대에게는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농촌에 사는 청년(20세~39세)인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매우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0년만 해도 332만여 명이었던 농촌의 청년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5년에는 201만 명으로 나타났다. 

다행인 것은 최근 농촌으로 이주하거나 농부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가구수는 2014년 1천110가구에서 2017년 1천340가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 농촌으로 온 이들 청년 농부는 고령화로 성장 동력을 잃어 ‘지방소멸’ 위기에 봉착한 농촌의 새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2018년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4년간 귀농한 30대 이하 청년은 2014년 65명에서 2017년 106명으로 증가했다. 

학곡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변희일 씨를 만나 청년농부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변희일 씨
변희일 씨                               사진 제공=변희일

90년생 서른 살인 그는 3년째 하우스 풋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새내기 농부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가끔 하기는 했어도 자신이 농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그가 농사를 업(業)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유는 땀 흘린 만큼 거두는 농사의 정직한 원리였다. 

대학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이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느끼고는 졸업을 목전에 두고 농사를 선택했다. 

농부가 되겠다고 결정하자 가장 반대를 하셨던 건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 특히 7년 전부터 허리가 아프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혼자 농사를 하던 어머니의 반대가 컸다. 그러나 농사일을 하겠다고 밭에 뛰어 들어온 아들을 차마 나가라고 하지는 못했다. 

농사 초기에는 어머니가 고수해오던 기존의 방식과 아들이 새롭게 배워온 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가진 노하우와 그의 신기술이 조화를 이루어 수확량도 늘고 자연스럽게 수익성도 높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어서 더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아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멘토가 되었다.

사실 희일 씨는 흔히 말하는 도시생활을 떠나 귀농한 경우도 아니었고, 농사를 처음 접해 생소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농부가 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농대에 있는 바이오시스템공학을 전공하였고 농사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초보 귀농 청년 농부보다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문 농업 경영인으로서의 목표를 세우면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배움과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2년제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에 다시 진학했다. 

그렇게 농부 2년 차를 넘어가던 중 그는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운영하는 미래농업교육원의 미래농업대학으로 옮겨가 6개월 합숙과정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농업 신기술과 자립경영 능력, 실무중심의 농업교육을 배웠다. 이러한 일련의 배움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님과 별개로 농사를 짓고자 독립경영에 대하여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내년에 창농을 할 계획으로 올해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촌리에 마련한 1천600평 규모에 현대화 시설을 기반으로 한 하우스 딸기 재배를 준비 중에 있다. 이를 위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영농정착지원 사업에 응모하여 현재 평창으로 선도농가실습을 다니고 있으며, 농협에서 지원하는 해외선진지 견학프로그램으로 네덜란드에도 다녀왔다. 

남들이 농업에 미래가 없다고 평가절하 하였지만 창농 계획을 말하며 고무된 그에게 농사의 매력을 물어보았다. 

“농업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농사는 공간이 넓은 트인 곳에서 일하니깐 답답한 기분이 없어요. 주변이 다 초록색이니깐 마음이 조용하고 평화로워집니다. 봄에 손톱만한 씨앗에서 싹을 틔워서 발아를 시켜 그걸 포트에 가식을 하면 요만한 싹이 나와요. 그걸 또 한 달 정도 키우면 그것도 자랄 때 신기하게 엄청 빨리 커요. 천천히 자라는 거 같으면서도 또 빠르죠. 커 가는 걸 보면 뭐라고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사회에서는 여전히 그가 이제 갓 싹을 틔운 새싹 같은 청년이라 생각하지만 자신이 키운 농작물이 잘 자라고 수확물이 좋은 등급을 받아 팔려나갈 땐 부모와 같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준 거 같아 뿌듯하다는 그는 농사를 통해 건강한 지역 먹거리 생산은 기본이며 주변에서 “농업해서 너, 되겠냐?”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놀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 청년농부로서의 삶이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직까지는 청년농부로서의 생활을 후회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농사일은 또래 직장을 다니는 청년들에 비해 자기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힘든 점이라고 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 하고 쉬는 날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청년농부의 삶이 더 바쁘죠. 주말도 없고 쉬는 날도 없어요. 새벽 5~6시에 일어나서 여름에는 밤 10시까지 일하고, 낮에 따놓은 고추를 다음 날 출하하려면 밤에 선별 작업도 마쳐야 하니까 사실은 엄청 힘들어요.”

그는 3년째 하우스 풋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새내기 농부다.사진 제공=변희일
그는 3년째 하우스 풋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새내기 농부다.      사진 제공=변희일

친구들 만나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은 그에게 친구들은 “장가는 갈 수 있겠냐?”며 도발(?)하기 예사였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던 그 주말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농사지어도 될 놈은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크게 웃는 그에게 진심 어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 내년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농사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준 여자 친구와 가정을 꾸린 첫해이자 창농에 도전하는 해다. 

그는 귀농·귀촌하는 청년들에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 농부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지원 제도나 사업만을 보고 시작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사에 목숨을 걸 수 있는지, 진짜 여기에 모든 걸 걸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수익이 생기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농업도 사업이고 경영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대중매체에서는 너무 잘 된 사례만 보여주니깐 농업하면 다 잘 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너무 다릅니다.

창농의 경우에도 결국 사업으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는 희일 씨. 젊음이라는 시간, 에너지와 열정을 소비하기에도 바쁠 한창때에 농사를 통해 자연의 섭리와 이치에서 삶을 배우고 있는 청년농부가 과연 어떤 열매를 맺어갈지 한껏 기대된다.

김미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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