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춘커 이주미입니다
[人터view] 춘커 이주미입니다
  • 백종례 시민기자
  • 승인 2019.1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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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외교, 금융, 패션 등 많은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는 문화 도시다. 이런 뉴욕에 사는 사람을 일컬어 뉴요커라고 부른다. 춘천에 춘커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어 반갑게 만나 보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만 살다가 춘천으로 이사 온 지 7년째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 회사 동료들로부터 얻은 별명이 춘커다.

"서울에서 너무 치열하게 살다 보니까 외곽에 집을 짓고 여유롭게 사는 삶이 로망이었어요. 그런데 ‘40~50살까지 일하고 갈 거야!’ 라고 말하는 주변 분들과 나이 들어 적응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러다 부모님이 춘천으로 오셔서 따라와야겠다, 결심한 거죠. 처음에는 춘천으로 간다하니 회사 동료들이 안 믿었어요. 경쟁업체로 가는 거 아니냐면서 오히려 놀렸어요(웃음). 제가 춘천, 춘천하니까 춘커라고 하면서."

업무 관계로 서울과 중국을 오가며 번아웃(스트레스가 해결되지 못하여 심리적, 생리적으로 지친 상태) 상태였다. 산업디자인 졸업 후 쇼핑몰 웹디자이너로 취업하고 MD 활동도 하면서 창업까지 했다. 중국공장에서 직접 생산도 하고 타오바오(중국 오픈 마켓)에 판매할 수 있는 도전도 했다. 한국시장의 치열함 때문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심신이 지친 상태로 한국의 대기업 웹디자이너로 복귀했다. 

이주미 씨.
이주미 씨.

“웹디자이너와 쇼핑몰 CEO, 중국에 갔을 때는 삶의 목표가 빨리 성공해야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딱 ‘돈!’이었던 같아요. 광저우에 길림성 혹은 북경에서 졸업장 하나 가지고 와서 일하는 아이들의 월급이 저의 1/3도 안됐어요. 그런데도 집으로 다 보내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얘네들은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한국에 있을 때 사장님들이 나를 이렇게 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들을 쥐 잡듯이 잡으면서 기술을 가르쳐 줬어요. 정말 다 가르쳐 줬어요. 이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요. 제 모습까지 투영이 돼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너무 힘들어 과로사하겠더라고요.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한국에 가면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춘천에 오니 여유가 삶에 스며들어 행복과 같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예전에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서울은 왜 사람들이 죄다 검은색 옷 입고 지하철을 그렇게 뛰어다니냐고. 그렇듯 치열하게 여유 없이 살던 제 삶에 이제 행복과 좋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좋은 분들도 만나고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그래서 여러 가지 도전을 하게 돼요. 해보고 싶었던 그림도 그리고 블로그 활동, 유튜브 활동 등 정말 취미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거든요. 예전 같으면 돈을 벌고 성공해야지 했는데 지금은 다양하게 도전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답니다.”

일하다 어느 날 올려 본 창문밖 하늘이 너무나 파랗고 아름다웠다. 엄마랑 같이 산책하며 본 노을이 ‘동해물과 백두산 같아!’라고 느껴졌다. 이렇게 조금만 둘러보면 자연이 있고 그곳으로 갈 수 있고 그리고 누릴 수 있는 춘천이 너무 좋단다. 그 자연을 보러 연차나 주말을 풀로 반납해야 하는 일이 이제는 필요 없다고 들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뻤다.

“춘천에 처음 왔을 때 늦은 저녁을 먹으러 명동을 갔는데 식당들이 문을 다 닫은 거예요. 잘 모르니까 명동이 제일 번화하고 클 것이다 생각하고 간 거죠. 너무 황당했어요. 서울하고 달랐던 거죠. 춘천을 잘 알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이사 와서 적응하면서 좋은 곳들을 알게 됐고 일하면서 좋은 아이템도 많이 접했거든요. 춘천의 맛집, 가볼 만한 곳 등 이제는 하루 천에서 3천 명 정도가 검색하는 블로거가 됐네요.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와요. 저보고 춘천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 같다고요(웃음). 서울 친구들은 제가 춘천 유명인인 줄 알고 있어요(웃음).”  

자전거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 제공=이주미

지금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MOCA(Mobile Commerce Academy) 사업 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의 마케팅을 도와드리고 쇼핑몰 개설을 해서 홍보를 하고 있을 때 센터를 알게 됐어요.  춘천에 와 빨리 자리 잡고 싶어서 해외실적과 수익 1위도 했던 여성의류 쇼핑몰을 다시 시도해봤는데 중국공장 핸들링이라든지 춘천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을 때 다른 기업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가 가지고 있는 작은 능력으로 도움을 드리다가 소개와 소개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연결이 됐어요. 지금은 모카팀에서 1억 셀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예요. 여섯 업체가 작년도 대비 올해 매출 1억 이상 달성했어요. 춘천에서 잘 맞는 분들과 직업을 잡은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저는 깨알인데 제가 감히 인터뷰를 하고 있다니 이것도 너무 감사하네요(웃음).”

춘천에 왔을 때 처음에는 폐쇄적인 환경에 놀랐다. 공장도  문화적인 것도,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럴 거면 서울에 살면서 가끔 춘천으로 올 걸’ 하고 후회아닌 후회도 했다. ‘서울하고 가까운데 왜 그럴까?’로 품었던 의구심이 직접 찾아다니게 했고 창작 활동을 하게 했고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춘천의 곳곳을 젊은 감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춘천은 춘천만의 매력이 있어요. 자연이 애국가에 나오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같거든요. 또 사람들이 연결돼 있어서 다 아는 사람이에요. 제가 몇 분밖에 모르는데 어디 나가면 아는 사람을 꼭 만나거든요. 그게 신기해요. 서울에서는 영영 볼 일이 없는 사람들뿐이었는데 춘천은 분명 볼일이 있게 되는 사람들이 많은 거잖아요(웃음). 그래서 ‘잘해야겠구나!’ 합니다. 그리고 춘천은 날마다 감사함으로 동행하는 삶인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인터뷰하는 내내 이 생각이 맴돌았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 끝이 기대되는 사람!’, 그가 말이다. 

중간에 끼어 들어와 살게 됐다고 겸손히 말하지만 춘천을 알리고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게 열심이다. 춘커 이주미로 인해 춘천을 알아가고픈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다. 

춘커처럼 춘천을 사랑해 보자. 춘커로 살아온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춘천을 사랑해 보고 싶다. 춘커처럼 거리를 걸어보고, 춘커답게 내 이웃과 삶을 나누며 그 사랑이 배가 되도록 말이다. 이런 모습이 함께 간다면 춘커들의 삶을 구경하는 또 다른 춘커가 되고픈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백종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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