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범 대표, "한창 많을 땐 춘천에 18개가 있었죠"

커먼즈필드 춘천(춘천시사회혁신센터)는 지난 12.14(토)부터 19(목)일까지 춘천역에서 ‘청년 스토리텔러가 만난 춘천의 노포들’이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오래된 점포인 노포의 주인을 관련 업종의 청년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센터는 현재 노포를 지역의 브랜드로 만들어 보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춘천사람들》은 춘천을 지켜온 ‘명곡사’, ‘경춘필방’, ‘강동대장간’, ‘박제남 테일러’, ‘성원이용원’, ‘황소표 국수’의 이야기를 6주에 걸쳐 싣는다. 첫 번째는 춘천 토박이 밴드 ‘모던다락방’의 정병걸 씨가 만난 ‘명곡사’ 이석범 대표의 이야기다. -편집자 주

40년 동안 춘천의 명동에서 음반가게를 지켜온 명곡사의 이석범 대표
40년 동안 춘천의 명동에서 음반가게를 지켜온 명곡사의 이석범 대표

춘천의 음악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명곡사’ 사장님입니다. 사장님을 만난 날,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해외에 사는 손자에게 보낼 음반을 찾는다며 명곡사에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을 맞은 사장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죠. 명곡사의 모든 음반들은 사장님의 손에서 누군가의 마음으로 전달됩니다. 이제 저도 춘천에서 뮤지션의 길에 들어선 지 21년이 됐네요. 명곡사는 존재만으로도 제 마음 한 편에 든든함으로 남아있습니다. 미래에는 명곡사에서 제 앨범이 히트 앨범으로서 더 많은 팬들에게 다가가기를 기원해봅니다. 

Q. 안녕하세요. ‘모던다락방’이라는 팀으로 춘천에서 음악활동 하는 정병걸입니다. 예전에도 명곡사에 음반 사러 몇 번 왔었지요.

A. 반가워요. 어쿠스틱 음악을 한다고요? 어쿠스틱이 오래 가죠. 요즘은 아이돌 음악 빼놓고는 음반이 잘 나가지를 않아요. 한동안은 힙합이 좀 괜찮았죠. 창모라든가 딘, 노엘. 잔나비도 많이 팔렸어요. 모든 장르의 싱어들이 자기활동에 만족과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데 현실은 좀…….

Q. 사장님은 젊은 뮤지션들도 다 꿰차고 계시네요!

A. 모르면 장사 못하니까. 잔나비 1집은 초판이 1장짜리로 나왔는데 요즘은 앨범을 많이 안 찍으니까 희소성이 있는 거죠. 중고시장에서 그게 25만 원까지 해요. 물론 수요 때문이지만.

Q. 사장님도 그런 초판을 몇 장 잘 모아두시면 금방 부자가 되지 않을까요?

A. 손님이 원하실 때 즉시 드려야 하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Q. 역시나 사장님이세요. 그런데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앨범은 뭔가요?

A. 아이돌 그룹이 대세죠. 이번에 ‘방탄소년단’의 《페르소나》가 많이 나갔어요.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잖아요.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보면 되죠.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했고 영어를 쓰지 않고 했다는 게 정말 대단해요. 우리는 앨범 판매로 판단하기 때문에 딱 증명이 되죠.

Q. 다행히도 음반가게를 꾸준히 찾아주는 발길이 있군요.

A. 요즘 음반숍은 존재의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요. 한창 많을 땐 춘천에 18개가 있었죠. 강원대와 한림대 안팎에, 명동에 금성레코드와 명동레코드 그리고 지하에도 2개가 더 있었고, 구 법원 앞에도 노래찾기 등등 정말 많았죠.

Q. 그 많던 게 다 문을 닫았나요?

A. 춘천에는 지금 나만 남았죠. 서울에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요. 큰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것들 위주고, 개인은 임대료 감당이 안 되죠.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A. 지금 생각은 그래요. 사람이란 게 영원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40년간 지켜왔는데 가게가 지속됐으면 하죠. 그래서 아들을 시켜볼까도.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는 없죠. 하루아침에 누가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40년간의 내 피땀과 노하우, 역사가 녹아있어 그냥 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서 운영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봐야지 해요. 하지만 요즘 퇴근하고 집에서 가만히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슬퍼지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젊은 친구들은 이런 걸 할 수가 없어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은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암튼 복잡한 심정이죠.

Q. 아직도 LP판이 들어오나요?

40년 전통의 명곡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음반들.
40년 전통의 명곡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음반들.

A. 그럼요! 이게 이번에 비틀즈 《애비로드》 한정판으로 만든 거지. CD로 제작된 것도 있고, 오디오 블루레이 디스크로 된 것도 있죠. 그리고 ‘권나무’도 ‘9와 숫자들’도 LP로 제작했지. LP, 오디오 블루레이 디스크, TAPE, CD, USB 등등 아직도 다양한 음반들이 계속 들어와요.

Q. 요즘 젊은 친구들은 LP를 플레이하는 방법도 잘 모를 것 같아요.

A. 그런데 앞으로는 LP가 활성화 될 거예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요즘 20대에서 LP를 찾는 수요가 있어요. 그들에게 물어봐요. 오디오를 갖추고 있느냐, 그러면 소장하려고 산다고 해요. 그들은 언젠가 오디오를 사게 돼 있어요. 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니까. LP로 특별하게 만들어서 소량으로 찍고 소장가치를 높여서 판매하는 거죠. 지금도 그렇게 발매가 되고 있어요.

Q. 명곡사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왔을 때가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A. 예전 80년대에는 춘천에 음악다실이 엄청 많았어요. 빅토리아, 휘앙새, 영다실, 귀뚜라미다실 등. 또 대학가 주변 지하는 거의 다 음악다실이었어요. 지금의 카페 역할을 했던 거죠. DJ박스에서 청춘남녀들의 신청곡을 틀어줬어요.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오디오가 없었거든요. 당시 DJ분들은 음악박사들이었어요. 음원의 감각을 손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니까. 명곡사를 오픈하고 나서 DJ분들 덕을 많이 봤죠. 그때는 음반이 새로 나오면 서로들 가져가려고 했죠. 빨리 구입해서 틀어줘야 하니까.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 따로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고, DJ가 먼저 와서 장부에 적어놓고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Q. 사장님은 언제 쉬세요?

A. 집안에 애경사가 있을 때 빼고는 매일 나와요. 아니, 이렇게 좋은 음악 들으면서 손님 맞고 하는 게 쉬는 거예요. 내 나이에 집에 있으면 누워 있다가 TV 좀 보다가 마실 나왔다가 그러는 거잖아요. 그보단 여기서 가끔 오시는 손님들이랑 대화하고 음악 듣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하는 거죠. 명곡사는 쉼터이자 춘천의 사랑방이에요. 내가 오래 가게를 지키다보니 손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명곡사가 있어서 참 좋다’, ‘명곡사 아저씨는 절대 늙지 말아 달라’ 그러는 거예요. 그분들이 저에게 위안을 주는 거죠.

Q. 명곡사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A. 40년 동안 한 장소에서 제가 있도록 해 주신 분들이죠. 덕분에 후회 없이 일을 즐기고 있어요. 앞으로도 문화와 예술의 도시 춘천의 음악지킴이가 되려고요.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끝까지 해보렵니다. 전국에서 도와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정병걸 청년스토리텔러(‘모던다락방’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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