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어렸을 때부터 브릿지 게임을 즐겼던 마이클은 브릿지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힘을 보탠 데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최고령(79세) 선수로 출전해 동메달까지 땄고 정부로부터 받은 포상금 1억5천만 루피아(1천250만 원)를 브릿지 육성 단체에 기부했다.

노점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만큼 소탈한 그가 허름한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진이 SNS에 퍼져 화제가 됐다. 현재의 식당 주인이 길에서 음식을 팔 때부터 찾아가던 단골이었다고 한다. 사진만 놓고 보면 독거노인의 초라한 ‘궁상’ 혹은 제때 식사하지 못한 사람의 ‘열중’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만한 파파라치 컷이었다.

사진을 찍어 올린 이가 “그는 위신보다는 맛에 더 신경을 썼다”고 촌평을 달았던 사진 속 주인공은 마이클 밤방 하르토노(Michael Bambang Hartono)였다. 경제전문매체 포브스가 발표하는 ‘인도네시아 부자 50인’에서 11년 연속 1위에 올라있는 억만장자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출신 화교인 마이클 밤방 하르토노(Michael Bambang Hartono)는 동생인 로버트와 함께 담배회사인 자룸(Djarum)과 BCA은행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들 형제의 재산은 2019년 기준 373억 달러(43조3천억 원)라고 한다.

이 정도면 가히 극강의 놈코어(Normcore) 완성자라 할만하다. 평범한(normal)과 단호한(hardcore)을 결합한 용어로, 소박하고 평범한 게 더 멋지다고 여기는 세계 패션계의 흐름을 뜻하는 용어다. 여유는 우아함을 동반하고 우아함은 평범하고 단순한 멋이 곁들여져야 완성된다. 여유로움과 평범이 오히려 진짜 사치가 되는 역설적인 시대인지도 모른다. 사치의 끝은 평범함(End of Luxury: Just Normal)이라는 흐름이 부러움과 동경을 타고 계속되는 이유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프레젠테이션 할 때마다 입었던 검은 터틀넥 셔츠는 놈코어 스타일의 선구자 격으로 인정받는데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주문해서 만든 것으로 한 벌에 100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 이처럼 초고가 명품 브랜드는 이제 로고와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이제 기술이 아니라 방식에 혁신을 집중한다. 

억만장자 하르토노에 관한 외신을 전하던 기자는 삶과 죽음 사이의 이건희 삼성 회장이 떠올랐는지 그의 재산-168억 달러(19조5천억 원)-을 친절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죄사함 받기 위해 5년 넘게 천국과 지옥 사이 연옥에서 단련 중인 그를 보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클래스였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과 함께.

폼을 버리고 클래스를 지키는 마이클과 달리 블링블링한 3스타만 챙겼던 회장은 폼도 클래스도 잃었다. 사치의 기준이 ‘물질’에서 ‘시간과 경험’으로 이동한지 이미 옛날인데 아직도 ‘돈, 돈, 돈’ 한다면 ‘나는 졸부’라는 고해성사나 다름없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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