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준 기자
유용준 기자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지난 25일 성탄절을 맞아 곳곳의 교회당마다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에는 평화’라는 말은 아마 신자들에게는 예수가 탄생함으로써 이미 이 땅에도 평화가 찾아왔다는 뜻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들렸다. 

레프 톨스토이는 대작 《전쟁과 평화》를 썼지만, 사실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화로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빈곤, 질병, 굶주림, 폭력, 억압, 착취, 무료함, 빈부격차 등이 이 사회에 만연할 때에 그렇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평화로운가? 정전상태라 평화롭지 못하다면, 문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 종전협정을 하면 평화가 찾아오는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정치적 민주주의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민주주의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오체투지를 해야만 하는 나라, 김용균 씨가 불빛 하나 없던 작업장에서 희생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희뿌연 조명 하나 달아주는 나라는 결코 평화롭지 않다. 어느 누가 감히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피해자와 희생자 유가족 앞에서 ‘평화로운 나라’라는 말 따위를 운운할 수 있을까.

춘천은 평화로운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지고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니 평화로운 곳인가?

총괄개발협약의 내용조차 모르는 이들이 하중도 레고랜드 조성에 찬동하고, 하룻밤에 8억 원의 세금을 공중에 흩뿌리는 ‘호수나라 물빛축제’는 시의회와 도의회를 무사히 통과하며, 춘천의 학교에 방사성 골재가 사용됐을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춘천의 민낯이다. 일부 주민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것도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올해 춘천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정부는 ‘교통복지’라는 간단한 개념조차 실현하지 못해 한 해의 마지막을 시끄럽게 넘기게 됐다. 시정부가 춘천시의 공공건축을 보다 수준 높게 만들어가기 위해 위촉한 총괄건축가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인터뷰 요청에 일체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가 참여하는 건축관련 위원회는 민원 제기 등을 이유로 회의나 회의 결과 공개에 지극히 미온적이다. 

지금 이 땅에 필요한 평화는 어떤 종교의 몫도 아닌 각지의 현실 정치인들이 실현해야 할 몫이다. 그들이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내년 이맘때에도 입으로 평화 운운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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