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청년, 춘천의 노포를 만나다] ② 1985년부터 춘천에 터 잡은 경춘필방
기획연재: 청년, 춘천의 노포를 만나다] ② 1985년부터 춘천에 터 잡은 경춘필방
  • 황유리(캘리그라피스트)
  • 승인 2019.12.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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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 우겸 박경수 필장
"죽은 앵무새를 애도하다가 깃털 붓을 만들게 됐지요"

‘경춘필방’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 우겸 박경수 필장이 운영하는 점포이다. 박 필장이 붓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74년이었다. 1985년 강원도 춘천에 터를 잡았는데, 이는 오로지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한 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붓 이야기 박물관’을 함께 운영 중이기 때문에 경춘필방을 찾는 손님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다녀가는 곳이 됐다. 장인정신으로 만든 붓 하나하나에 담긴 자부심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Q. 붓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요즘은 무척 귀하죠? 선생님처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도 정말 몇 분 안 계신다고 들었어요.

A. 과거에는 붓이 글을 쓰는 일상도구였잖아요. 아시다시피 먹, 벼루, 종이와 함께 붓은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했지요. 그때는 물론 붓을 만드는 장인인 필장(筆匠)들도 다수 존재했을 테고. 조선시대 기록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족제비, 노루 등의 털로 필장들이 붓을 제작했고, 이것을 필방(筆房)과 필상(筆商)에게 공급했다고 나옵니다. 전통기법으로 붓을 만드는 무형문화재는 저를 포함해 6명 정도가 남아있어요. 광주에 2명, 울산에 1명, 대구 1명, 전주 1명, 강원도 춘천 1명, 이렇게 알고 있죠. 이 분들이 각 지역에서 붓 제작 기술을 전승 중입니다.

필자(왼쪽)와 함께 박물관 방문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박경수 필장
필자(왼쪽)와 함께 박물관 방문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박경수 필장

Q. 40년 넘도록 붓 만들기 외길을 걸어오셨어요. 난관도 많으셨겠지만 대한민국 명인 인증, 무형문화재 지정 등 좋은 일도 있었어요. 지나온 삶의 여정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제 고향은 전남 화순이에요. 1974년, 당대의 유명한 양모 붓 창시자인 박순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필공예 기법을 사사받았어요. 그 후 적잖은 세월 동안 옛 붓매기 전통기법을 계승하려 매진했어요. 붓 만드는 모든 공정은 수작업이라 부단함과 정성이 없으면 되지를 않아요. 힘든 와중에도 대한민국 전통미술 대전 대상 등 23개 경진대회에서 입상했고, 2005년 대한민국 명인으로 인증도 받았어요. 무엇보다 기뻤을 때는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붓 공예의 가치를 당당히 인정받은 것 같아서요.

Q. 선생님은 특히나 깃털 붓으로 유명하신데요, 닭털 붓을 오래도록 연구해오셨고 복원에도 성공하셨는데 그 과정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춘천에 정착하면서 기르던 앵무새가 하나 있었는데 1989년에 그만 세상을 떠났어요. 아름다운 깃털로 나를 기쁘게 해주던 이 새를 영원히 기리고 간직할 방법이 없을까 하던 중 무릎을 쳤어요. ‘그 깃털을 붓으로 만들어주자! 그러면 더 의미가 있겠지.’ 처음으로 깃털 붓을 만들게 됐던 거죠. 이후 강원도와 춘천의 색깔을 가진 붓을 제작하기 위한 많은 고민을 했고 닭털 붓 연구로 이어지게 됐답니다.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등이 남긴 조선후기 고서에도 닭털 붓의 기록이 있어 복원의 필요성도 느꼈죠. 5년간의 노력 끝에 닭털 붓 제작이란 소중한 결실을 얻게 됐죠.

Q. 명품은 재료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A. 흔히 하얀 염소와 까만 염소가 있지요. 붓을 만들 때는 흰 염소 털이 좋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흑염소를 많이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흰 염소가 많이 귀해졌어요. 문제는 흑염소 털로는 붓을 못 만든다는 것이죠. 흰 염소의 털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털이 두꺼워지고 중간에 힘을 안 받아서 탄력이 생깁니다. 흑염소 털은 심을 박아서 작업을 해야 되는데 누르면 갈라져 버려서 사용할 수가 없지요. 흰 염소 털 구하기가 힘들어졌어요. 방목을 해야 하는 동물이라 직접 키우기도 어려워요. 지금은 대부분 중국산을 씁니다.

서면 애니메이션 박물관 근처에 있는 ‘붓 이야기 박물관’
서면 애니메이션 박물관 근처에 있는 ‘붓 이야기 박물관’

Q. 글씨 쓰기를 배우는 경우는 흔한 것 같은데, 붓 제작은 어떤가요?

A. 전통붓은 손으로만 만들다 보니 더 힘든 부분이 있어요. 지금은 내 자식들이 나를 잇고 있지만 정말 배우려고 하려는 사람이 없어요. 돈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우리 애들도 고충이죠. 그런데도 정작 자식들에게 칭찬도 잘 안 해줍니다. 자만할까봐 질타만 하게 되죠. 큰아들은 전통 붓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고, 둘째 아들은 석사 마치고 전통 붓 재현에 몰두하고 있어요.

Q. 붓의 종류는 어떻게 나뉘나요? 그리고 붓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는 몇 가지나 되는지요.

A. 일반적인 붓의 종류는 용도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사군자 붓, 산수화(동양화) 붓, 채색 붓, 단청 붓, 면상 붓 등이 있고, 글씨를 쓸 때 필요한 한문 붓, 한글 붓 등이 있습니다. 붓 제작에는 많은 동물의 털이 쓰입니다. 염소, 족제비꼬리, 돼지, 소, 말, 노루, 청설모, 사슴, 토끼, 호랑이, 쥐, 이리, 개, 담비, 공작, 닭, 꿩 등이죠. 그리고 붓대 재료로는 대나무, 옥, 금, 은, 상아, 소뿔, 도자 등이 있지요.

‘붓 이야기 박물관’의 내부 전시공간 모습
‘붓 이야기 박물관’의 내부 전시공간 모습

Q. 오래 전에는 필수품이었던 붓, 지금 우리에게 붓은 어떤 의미일까요?

A. 우수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중요 도구로 묵묵히 일을 해온 전통 붓은 그 가치가 매우 높지요. 하지만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한국의 정신세계와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꼭 필요하죠. 우리 필방 옆에 정부와 강원도, 춘천시 등의 지원으로 설립된 ‘붓 이야기 박물관’이 있어요. 전통 붓의 역사와 종류, 제작과정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죠. 제 작품들도 전시돼 있으니 감상하시기를 바랍니다. 붓을 만드는 전통적인 공구들과 붓 제작 공방 관람도요. 붓 만들기, 붓 사용해보기 등의 체험도 해볼 수 있어요. 체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에요. 남녀노소 누구든 즐겨보시기를 권해요.

Q. 이건 아주 흥미로운 얘기인데요, 선생님께서 최초로 아기 배냇머리로 붓을 만드셨다는데 맞나요?

A. 배냇머리는 사람에게 처음 나오는 머리카락이니 얼마나 소중할까요. 머리털은 한번 깎으면 단면이 생겨버려서 붓으로 사용할 수가 없지요. 요즘 출산율 저하로 난리잖아요. 우리 춘천에서도 세상에 태어난 아기와 고생한 엄마를 위해 축하선물로 배냇머리 붓을 만들어 주게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춘천의 붓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지역 활성화도 되면 좋겠습니다.

황유리(‘유리링의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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