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영어 lottery, 이태리어 lotto로 부르는 복권의 어원은 숙명, 운명이라는 뜻을 지닌 네덜란드어 lot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운명의 여신이 한 사람에게는 미소를 짓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헤살을 부리고 다녀갔다.

#생각하고행동하라: 라트비아 태생인 디지스 피락스(Didzis Pirags)는 9년 전 영국으로 이주해 자신이 셰프로 일하고 있는 펍의 2층 다락방에서 다섯 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나흘 전 점심시간에 6.5 파운드(약 1만 원) 어치의 온라인 즉석복권을 구입해 아들과 함께 긁었는데

첫 게임에서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던 그는 곁에 있던 유모한테, 다음에는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펍의 사장한테 확인을 부탁했고 마지막으로 복권 회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요청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당첨금을 수령하면서 최고의 성탄절을 보장받았지만 그는 성탄절 연휴 내내 주방일을 하며 일상을 이어갔다. 근무 교대를 무작정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침실 네 개가 딸린 집을 28만 파운드에 구입하고 아들에게는 성탄 선물로 헤드폰을 사주고 친구에게는 쓰던 차를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당첨금을 쓰기 전에 당분간 횡재한 기쁨에 “푹 빠져” 지낸 다음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계획이라고 한다. 아들에게 가능한 가장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 횡재로 인해 어긋나는 일이 없기를 빈다. 

#행동하고생각하라: 1812년에 시작된 엘 고르도(El Gordo: The Fat One)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리는 뚱보 복권이다. 7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12월 21일까지 약 6개월간 판매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당첨번호를 발표한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복권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걸린 총 상금액이 23억8천만 유로(3조872억 원)였던 걸 보면 엘 고르도가 6개월 간 얼마나 많이 먹어치운 뚱보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달 23일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 방송국 RTVE의 기자 나탈리아 에스쿠데로(Natalia Escudero)는 엘 고르도 추첨과 관련해 시민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는 생방송 도중 자신이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방송국 동료들을 향해 “난 내일 출근하지 않는다”고 외치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당연히 주변에 몰려 있던 시민들의 샴페인 세례도 쏟아졌다. 하지만 당첨금을 확인한 후 그는 트위터로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사과했다. 그의 당첨금이 5천 유로(4천285 파운드, 640만 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횡액에 걸려 한순간 비틀거린 나탈리아가 부디 다시금 곧추서고 씩씩하게 걸을 수 있기를 빈다. 

#깨어있고열려있으라: 새해 달력을 펼치며 각자 계획에 잠기는 1월이다. 만나는 이에게 덕담을 건네고, 현자에게 지혜를 구하며 새해 아침을 맞는다.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경험칙은 서너 개 정도였다. 

삶에 선택지는 많지만 정답은 없다. 현실에 얽매이면 울어야 하고, 상황을 무시하면 외롭다. 운명의 여신은 우리 앞에 뒤엉킨 실타래를 던져놓고 게임을 지켜본다. 그리고 대개 그 여신은 희극보다는 비극을 기대하는지라 우리에게 어제와는 다른 훈수를, 그것도 달콤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늘 깨어있고 열려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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