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통계에 의하면, 2018년 한해 34만 가구, 50만 명이 귀농귀촌을 했고, 강원도로만 좁혀도 4만 명 수준이란다. 이런 규모라면 귀농귀촌은 명백한 대세다. 도시대탈출이라는 사회현상이 연일 보도돼야 맞다. 그런데 농촌인구는 어째서 늘지 않을까? 어째서 지방소멸의 위기만 연일 보도되는 것일까?

세상의 진실은 이러하다. 강원도 농촌마을에 실제로 자리 잡는 사람들은 해마다 4만 명이 아니라 4천 명 남짓으로 짐작된다. 후평1동 주택에서 장학리 아파트로 이사하면, 만천천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이지만 귀촌이다. 주소가 읍면인 경기도 신도시에 자리 잡는 신혼부부들은 귀촌부부다. 법적 통계기준과 우리의 기본상식은 다르다. 따라서 왜곡된 귀촌통계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실은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한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넓고 쉬운 길이 펼쳐져 있으려니 낙관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여전히 귀농귀촌은 좁은 길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농촌으로 향하는 도전을 선택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농민이 되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오래된 귀농 격언을 소환하자면, “귀농귀촌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시골길을 지나면서 “나중에 여기서 살면 참 좋겠네” 하고 잠시 낭만적인 꿈을 꿔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언제나 귀농귀촌의 길을 밟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아무나’ 못하는 까닭은, 마냥 꿈으로만 남길 뿐 꿈을 현재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 이야기하면 열에 아홉은 묻는다. “돈이 얼마쯤 있어야 되나요? 싸고 좋은 땅은 어디 있을까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어떤 공식을 동원해서라도 꿈을 화폐로 환산해서 따지는 법에 익숙하다. 이러한 계산법에 의하면 우리는 언젠가의 귀농귀촌을 위해 돈을 열심히 벌고 준비하면 된다. 매우 유력한 방법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돈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귀농귀촌의 꿈을 언제까지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서성대기만 할 것인가? 꿈을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현재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마침내 아주 극적으로 꿈을 앞당길 수 있는 ‘꿈같은’ 공식이 있다, 새해 선물로 드린다. 귀농귀촌을 현실화하는 새로운 접근법. 발상을 바꿔보면 어떻겠는가? 

귀농귀촌은 말 그대로 농사지으러 돌아가고 농촌마을로 돌아가는 일이다. 훗날 귀농해 농사를 지으며 “농사가 이렇게 고달프고 돈도 안 될 줄이야!” 하고 한탄할지 모른다. “이렇게 희망이 없고 황폐할 줄이야!” 하고 개탄할지 모른다, 그 답답한 미래를 오늘로 앞당겨 개선하는 것이 귀농귀촌의 준비고 현재화다. 

스스로 물어보자. 돌아가서 할 농사와 돌아가서 살 시골은, 우리의 오늘과 단절돼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오늘과 연결돼 있는가? 귀농귀촌을 나중의 꿈으로만 여기는 사람은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잠시 발상을 뒤집으면, 잠시 오늘의 삶을 천천히 살피면 달리 보인다. 

농업농촌은 우리의 밥상과 끈끈하게 연결돼 있지 않나? 농경의 역사와 흙의 기운이 우리 의식 깊숙이 박혀있지 않나?! 그리고 그대와 나 우리에게 유전돼 존재하는 농민의 DNA여!

귀농귀촌을 통해 단순 소박한 삶의 경지를 꿈꾼다면 보통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한 해 칼럼에서 썼듯이, 농업농촌은 너무너무 복잡해지고 너무너무 힘겨워졌다. 언젠가 시골 마을로 이사하려고 할 때, 그때 농업농촌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새해, 귀농귀촌의 꿈이 먼 꿈이 아니라 2020년 당장의 꿈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맛깔나고 정의로운 밥상을 통해, 농민과 더 깊이 연결되고 연대하는 소비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농촌을 어지럽히는 욕망과 개발의 망령은 도시에서 비롯된다. 공범이나 방조자가 되지 말고 농촌마을의 단순 소박함을 지키는 도시민이 되기를 희망한다. 귀농의 현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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