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요 (호반초등학교 교사)
남지요 (호반초등학교 교사)

학교가 민주적으로 변화하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민주적 관리자의 등장을 요구한다. 학교 민주주의에 있어 관리자의 역할이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장의 민주적 리더십 발휘는 민주적 학교를 만들기 위한 실천의 한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돼버린다면 학교의 변화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한 개인의 역량을 넘어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집단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민주’라는 말은 누구나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내 주체로 선다는 뜻을 담아낸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역할, 우리의 운명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되어 함께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적인 학교에서는 ‘학교’라는 공간과 ‘교육’이란 행위를 매개로 만난 이들이 역할과 책임을 함께 나누어지며 함께 결정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런 곳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나아가기’다. 임길택 선생님의 시에 등장하는 ‘개구리’처럼 서로의 목소리로 길을 내고 꿈을 꾸는 것이다.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고 길을 내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를 교육활동 중심의 공간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는가 싶지만, 돌이켜보면 학교는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구조로 오랜 시간 유지돼왔다. 학교 홈페이지 교직원 소개란을 보면 담임을 맡은 학년반 외에도 개별 교사의 담당 업무를 정리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사의 정체성에서 행정업무가 큰 축을 차지하고, 교육과정과 수업은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학교구성원들이 함께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교육활동을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 못했다. 각자의 영역이 나눠지는 구조 속에서 협의는 없고 전달이 가득했으며, 구성원들은 파편화돼가기 쉬웠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이다. 교육과정을 실천하기 위한 학교의 구조와 운영방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학교 업무 정상화는 기존의 문서 중심, 행정 중심의 업무 처리에서 벗어나 학교의 역할, 각 구성원이 하는 일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덜어내야 할 것들을 덜어내고, 교육활동인 것과 교육활동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으로 기존의 일들을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 생긴 빈자리는 함께 모이고 토론하는 문화, 공동의 연구와 실천으로 채워진다. 2월, 해살이를 준비하며 업무분장에 매몰되지 않게 됐다.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고 돌아보게 됐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담아 엮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독립된 교실이란 공간을 불가침 영역으로 생각하며 철저한 개인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에 있어 온전한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이 상황을 해결하고 나아가고자 교사들은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학교를 바꾸어 내기 위해서는 “교사들은 단순한 인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서 전문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진정한 협력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사/교직원 다모임에서는 자유롭게 발언하며 평등하게 참여하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숙고하며 합의하는, 함께 결정한 것은 함께 책임지고 실천하는 민주적 회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이 될 때 수업을 매개로 만나 학습공동체를 구성해내고 홀로 고립된 존재가 아닌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민주와 협력의 학교문화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무엇을 위해 수업을 여나요? 연구를 위해 수업을 열죠.” 1학기부터 이어져 온 수업연구의 끝자락, 내년도 방향을 논의하다 나온 질문에 교사들은 답했다. 보여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던 수업열기(공개수업)도 교사들이 고민을 나누고 함께 모이면 새로운 길을 낼 수 있다. 다모임, 학년(군)협의회, 교원학습공동체와 같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구조의 형성은 교사들이 학교가 가진 느슨한 결합을 극복하고 공동의 연구와 실천을 이뤄낼 수 있도록 돕는다.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함께하는 문화가 생겨난다. 하나하나의 디딤돌이 이어지면, 함께 연결하고 결합하여 사는 삶의 경험이 축적된다. 우리가 놓는 디딤돌 하나하나가 민주 학교로 가는 길을 내고 그렇게 학교를 바꿔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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