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체험: 보행친화도시? 스마트함이 없으면 친화도 없다! ②

서울시 노원구에 거주하는 32살 B는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춘천을 자주 방문했다. 며칠씩 소요되는 긴 여행은 먼 지역이나 해외로 가곤 했지만 주말을 이용해 무박, 혹은 1박2일로 가는 짧은 여행지로는 춘천이 제격이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관광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강촌이나 남이섬에는 젊은 관광객이 많아 활기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에도 B는 연말을 맞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춘천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평소 늘 자가용을 이용해 춘천에 다녀갔지만 주말에 교통체증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가 연일 블랙아이스로 인한 교통사고 소식에 불안해서 이번에는 경춘선 전철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또 전철을 이용하는 김에 김유정 역, 춘천역에서 내려 역사 근처 관광지를 걸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벽돌 공장에 걸린 전시물. 철판에 각종 사진을 프린트해서 걸어 두었다.
벽돌 공장에 걸린 전시물. 철판에 각종 사진을 프린트해서 걸어 두었다.

친구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 춘천역에서는 ‘소양강스카이워크’와 새로 생겼다는 ‘자전거 여행자의 집’을, 김유정역에서는 김유정 생가 일대를 방문하기로 했다. 전철을 타기 위해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 B는 마치 대학생 시절 MT를 가는 듯 설렘을 느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춘천역에 도착한 B와 일행은 춘천역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주차장 혹은 공터와 마주했다. B는 친구에게 “여기가 옛날 미군부대가 있던 ‘캠프 페이지’래. 이제 공원도 만들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래”라고 말하고는 ‘소양강스카이워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약 1.1km 떨어져 있었으므로 빨리 걷는다면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B에게 여행의 목적은 이동이 아니었다. B는 낯선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얻는 데 여행의 목적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춘천여행에서는 아주 작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되도록 천천히 걸으며 서울에서는, 혹은 평소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인도는 곧게 뻗어 있었다. 조금 오래된 듯 여기저기 갈라지고 패였지만 걷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마치 직진을 강요하듯 곧게 뻗은 길에 둘러볼 ‘꺼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버리는 음료 캔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표정이 미소를 짓게 한다.
버리는 음료 캔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표정이 미소를 짓게 한다.

처음에는 방치된 군용지가 나오더니 다음에는 주차장, 다음에는 중고자동차 판매장, 벽돌 판매장, 자동차 공업사 등이 이어졌다. 관광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도 빛바랜 현수막이 전부였다. 4차선 도로 건너편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설명도 없는 철제 벽만 몇 백 미터가 이어졌다. 언뜻 건설현장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실은 야외영화촬영소라는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소양강 스카이워크까지 가는 길에서 B씨가 찍은 사진은 단 2장이었다. 첫 번째는 벽돌공장 담벼락에 걸린 전시물이었다. 아마 공장 관계자 중에 영화나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지 명화포스터나 레코드 표지 등을 철판에 정성스럽게 프린트를 해서 담벼락에 죽 걸어 놓았던 것이다. 두 번째는 근처 어느 닭갈비 가게 주인이 다 먹고 버리는 음료수 캔을 사용해 다양한 얼굴표정을 만든 전시물이었다. 같은 표정이 하나도 없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했다.

자전거에사 내려 자전거를 끌고 6차선 도로를 지나 들어가야 하는 ‘자전거 여행자의 집’.
자전거에사 내려 자전거를 끌고 6차선 도로를 지나 들어가야 하는 ‘자전거 여행자의 집’.

 

이런 사소한 것들이 관광객에게는 중요하지 않을까? 비록 화려하지 않더라도 잠시라도 눈길을 끌게 만드는 무언가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소양강스카이워크’는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 조성하는 스카이워크처럼 아찔한 규모를 즐길 수는 없었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B와 친구들은 소양강처녀 상과 쏘가리 상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새로 지었다는 ‘자전거 여행자의 집’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춘천의 자전거 도로는 소양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 정작 ‘자전거 여행자의 집’은 6차선 도로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전거 도로 한 편에 ‘자전거 여행자의 집’이 있어서 자전거 여행객들이 길을 건너지 않고 곧바로 머무를 수 있다면 이용자들이 훨씬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유정 생가 앞 도로 상황. 광장에 가까운 엄청난 면적이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김유정 생가 앞 도로 상황. 광장에 가까운 엄청난 면적이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B와 친구들은 다시 춘천역으로 돌아가 전철을 타고 김유정역으로 향했다. 김유정역에 내리니 여러 명의 젊은 여자들이 셀카봉을 들고 김유정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사 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김유정역 근처에는 유정이야기 숲, 옛 역사전시관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할 뿐 아니라 걷기에도 좋았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들이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 철길 옆으로 난 길도 있었고 현재의 인도와 옛 철길 사이에 구불구불한 오솔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김유정 생가로 이어지는 길도 다양했다. 잔디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길은 직선보다는 곡선을 그리며 전시관의 앞과 뒤를 자유롭게 잇고 있었다. 따라서 B와 친구들은 원하는 장소에서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2가지 아쉬웠던 점은 있었다. 첫째는 옛 김유정 역사에서 김유정 생가로 넘어오는 4차선 도로가 위험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차량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덤프트럭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나다니는데 대로에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그려진 3개의 건널목에는 신호등이 하나도 없었다.

과속방지턱도 없으니 운전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낼 수밖에 없어 보였다. 두 번째는 김유정 생가 앞의 도로였다. 김유정 생가 앞에는 광장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삼거리가 있다. 워낙 크다 보니 관광객들이 삼거리 한가운데에 주차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삼거리 복판에는 주차금지를 알리는 두 줄의 노란색 실선과 주차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B는 친구들에게 이곳에 관광객들이 참여해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지 않겠냐면서 무엇이 있으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며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김유정역으로 향했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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