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행복은 무슨 맛일까요?
[人터view] 행복은 무슨 맛일까요?
  • 이경애 시민기자
  • 승인 2020.0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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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미수’ 권강현 대표

크리스마스와 송년의 분위기에 조금은 들뜬 것처럼 느껴지는 날, 한 여자, 아니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달콤쌉싸름한 행복이야기 티라미수’의 권강현 대표. 사전 정보가 없었던 상황이라 전화 한 통으로 약속을 잡고 무턱대고 찾아갔는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작은 작업 공간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습니다. 그이에 비하면 스스로가 부자인 것도 같고 갑자기 너무 안일하고 작게 살아왔다는 가난한 느낌도 들어서 마음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베이킹에 관한 이야기와 여유 있는 사람의 넉넉하고 풍요로운 봉사와 나눔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냥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연말연시의 기사로는 부족할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권강현 대표.       사진 제공=권강현
권강현 대표.      사진 제공=권강현

권강현, 그는 정신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11년 전 교통사고로 찾게 된 병원에서 시신경 쪽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두렵고 절망적인 그에게 남편은 아무런 위로도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남편은 사업이 어려워져 아내에게 관심을 보일만한 심적 여력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런 상황은 권 씨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결국, 자살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이들과의 동반 자살을 계획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스스로 자살예방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했고, 병원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폐쇄병동 입원, 퇴원, 정신과 상담치료, 다시 입원, 퇴원, 상담…, 끝을 알 수 없는 암울하고 절망스러운 날들이었습니다. 지독한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그리고 치료약물로 인하여 정신은 점점 더 무너져 내렸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떼놓지 못하는 지경이 됐지만, 누구도 근본적인 도움은 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그 절망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베이킹이었습니다.

오븐 안에서 빵이 부풀어 오르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행복했어요.

그래서 집안에서 혼자 독학으로 베이킹을 공부했어요.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내던 때라 재료를 택배로 시키고,

집 앞에 두고 가면 문만 빼꼼 열고 집어 들고 들어왔어요. 

그렇게 조금씩 그녀는 세상 속으로 섞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나만 아픈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제일 힘들었을 사람은 어쩌면 남편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남편도 사람인지라 힘이 들거나 참을 수 없을 때는 욕도 하고 헤어지자는 말도 했지요. 그렇지만 내 곁에는 언제나 남편이 있었어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예요. 우리 남편을 보면 다들 ‘어머, 남편이 있었어?’ 그랬어요. 그런데 8년 전, 폐쇄병동에 있을 때, 또 한 번 큰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이전 4년 동안의 기억을 다 잃어버렸어요. 남편도 아이들도 친정엄마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남편에게 존대를 해요. 그 전에는 둘이 동갑이라 반말을 했는데…. 아들한테 ‘너 누군데 아줌마 집에 왔니?’ 그러기도 했죠. 그런 나에게 남편은 결혼식 비디오랑, 아이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찍은 영상들을 보여주며 애를 썼어요. 지금의 기억은 온전한 나의 기억이 아니라, 학습에 의한 것들이 많아요. 2년쯤 후에 조금씩 기억이 돌아왔지만 잃어버린 시간 동안 나에게 식구들이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기꺼운 것들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잊은 척해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이 많으니까요. 스스로 잊고 싶어서 기억을 끌어내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11년의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상담을 받던 날, 담당 의사의 질문은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빵을 굽고 쿠키를 만들어 나누는 일, 그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공방이며 상담소이기도 한 권강현 대표의 사업장  사진 제공=권강현
공방이며 상담소이기도 한 권강현 대표의 사업장.       사진 제공=권강현

현재 그녀는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정신보건센터 등 여러 곳에 후원을 하고,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한 일대일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그날도 작업실 한 켠에는 노인복지관에 후원으로 보낼 케이크 박스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나눔을 하면서 나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정신이 아픈 사람이나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많이 해요. 그러다 마음이 열리는 순간 그들은 울어요. 누군가 내 어깨에 기대어 한참을 울고서 돌아간 후에는 행복하지요. 이렇게 행복한 나눔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한 달여 전에, 그는 작업실에서 공포스러운 일을 또 당했습니다. 취한 걸음으로 비틀거리며 한 남자가 공방으로 들어와 행패를 부렸던 겁니다. 그 충격으로 가게 문을 닫고 다시 불안에 휩싸였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티라미수'에서 마카롱을 얹어 만든 수제 케이크.  사진 제공=권강현
'티라미수'에서 마카롱을 얹어 만든 수제 케이크.       사진 제공=권강현

“그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너무 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내가 나눔을 하는 대상이 위험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다시는 봉사를 못 할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작은 개인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어요. 다시 해보고 싶었어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다시 문을 열고 손님의 안부 전화를 받고, 배부른 임산부가 찾아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문을 열지 않아 아쉬웠다고 하면서 쿠키를 사 가고, 뱃속의 아이 출산예정일을 메모하면서 꼭 전화 달라고 부탁했어요. 행복한 순간을 같이 하고 싶어서요. 이런 일들이 나를 견디게 하고 살게 하는 일들인 것 같아요. 지금은 남이 나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는 연연하지 않아요. 제가 마음을 다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이유는 그들이 나보다 못하거나 불쌍해서가 아니라 나의 하찮은 재주가 그나마 귀하게 쓰여지는 것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나눔이나 봉사는 가족들을 화목하게 합니다. 제가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멋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그의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이 세상에-매일이 흔들리는 나무였어도-,

아직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10시가 되면 한 사람이 공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입니다.

남모를, 그리고 숨기고 싶은 아픔을 가진 사람입니다.

직업교육 제의를 받았을 때, 조금 망설였지만

내 작은 도움이 그분이 앞으로 살아갈 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생각에

부담스런 마음을 접고 받아들였습니다.

그에겐 꿈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로운 공간에서 과거의 자신처럼 조현병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리고 타인들에게 인정받는 어떤 일을 이어가기보다는 그런 일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생은 달콤 쌉싸름한 티라미수 같아요.” 그가 가르쳐준 또 다른 의미(나를 끌어올리다, 기분 좋게 하다)를 가진 ‘티라미수’를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달빛 환한 길을 걸어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오면서 잠깐 울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심장 언저리는 꽃이 피는 중이었는지 따뜻했습니다.

“누구든 인생에서 한 번쯤은 기립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영화 <원더>에서 외모 때문에 헬멧을 쓰고 다니던 꼬마 어기의 대사 한 줄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르지만 다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꽃잎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당신과 이쁘지 않은 흉터를 숨기고 사는 내가 함께….

2020년은 우리 모두 기립박수를 받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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