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문화유산 얼마나 알까?] 근화동 ‘당간지주’
[춘천 문화유산 얼마나 알까?] 근화동 ‘당간지주’
  • 춘천학연구소
  • 승인 2020.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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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다. 문화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매년 외국인 관광객 9천만 명이 찾는다는 프랑스는 세계적인 자동차나 반도체 회사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가 관광의 천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한몫하겠지만 무엇보다 잘 보존된 문화유산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나 도시의 진정한 힘은 인구나 면적이 아니라 문화에서 나온다. 문화특별시를 지향하는 춘천이지만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유적이 파괴되어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3개밖에 없다. 많지 않은 문화유산을 시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문화적 자긍심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춘천사람들》은 춘천학연구소와 함께 춘천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특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바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강원도 춘천시 당간지주길 61(근화동)에 위치한 '당간지주'
강원도 춘천시 당간지주길 61(근화동)에 위치한 '당간지주'

 

당간지주(幢竿支柱)는 깃발[幢]을 달아 세우는 장대[竿]를 지탱하기 위해 세운 두 개의 기둥[支柱]을 말한다. 사찰 앞에 설치하여 그 주변 지역이 부처의 위신과 공덕을 지닌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거나, 법회 등 특별한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불교가 전성기를 누리던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주로 제작됐는데, 수많은 전란과 유교중심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사라졌다. 당간은 철이나 나무로, 지주는 철, 금동, 나무 등으로 제작하였다. 현재 철로 제작한 당간이 갑사(岬寺) 등에 남아 있고, 돌로 제작된 소수의 당간지주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데 현재 48개가 국가 및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근화동 당간지주(사진)는 1963년 보물 제76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사찰은 없어지고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총 높이 3.52m의 웅장한 지주와 당간을 받치던 2단의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다. 

당간지주는 일반적으로는 절이나 절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지만, 춘천의 경우 어떤 절에 속하였는지 불분명하여 위치한 지명을 따서 명명하였다. 돌을 다듬은 기법이나 연꽃잎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될 뿐인데, 인근 요선동에 있는 춘천칠층석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간지주가 절의 정문에 배치되는 것을 고려할 때, 구 캠프페이지 구역과 소양로, 봉의산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사찰이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봉의산 인근 사찰과의 관련성을 따져보고, 향후 철저한 발굴을 통해 사찰의 면모를 파악하여 가능하다면 복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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