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휴지(休止)는 ‘포즈(pause)’, ‘쉼’, ‘띄기’, ‘띄어 읽기’, ‘끊어 읽기’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여태 통일된 개념으로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휴지의 주요 기능은 ‘호흡’, ‘의미 확정’, ‘강조’ 세 가지다. 리듬과 관련이 깊은 휴지는, 낭송에서 중요한 기본 요소다. 휴지만 제대로 익히면, 낭송 실력은 상상 이상으로 향상될 수 있다. 리드미컬하게 읽으면서도 그 내용과 의미를 명확히 전달할 뿐 아니라, 핵심 내용까지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지는 크게 ‘기능·위치·길이’에 따라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기능’에 따른 종류로 1) 호흡과 관련한 ‘생리적 휴지’, 2) 의미 확정과 관련한 ‘문법적 휴지’, 3) 강조와 관련한 ‘심리적 휴지’가 있다. 우리는 이 세 종류의 휴지에서 오류를 자주 범하지만, 휴지가 발생되는 그 원인과 성격을 이해하면, 오류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둘째, ‘위치’에 따른 종류에는 1) 문말(文末)휴지, 2) 문중(文中)휴지가 있다. 문말휴지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나, 문중휴지는 간단치도 녹록치도 않다. 이는 이후의 연재에서 다시 살피겠다.

셋째, ‘길이’에 따른 종류엔 1) 반(半)휴지 2) 보통휴지, 3) 긴휴지가 있다. 길이에 따라 나뉜 각 포즈마다 또 미세한 차이가 있다. 휴지의 종류는 이 정도로 개략하고, 오늘은 반(半)휴지에 대해 톺아본다.

반휴지는 문중(文中)휴지 중 완전하지 않은 휴지를 나타내는 개념인데, 낭송에서 반휴지에 대한 이해가 전무해 오류를 많이 범한다. 특히 그 적절한 길이를 구현하지 못한다. 따라서 반휴지에 대한 그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라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서 평소에 대화하듯이 말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를 낭독 하라고 하면, 대부분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 또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라고 읽는다. 이는 둘 다 그릇된 띄어읽기다. 이야기를 더 진척시키기 전에 먼저 [/]은 ‘반휴지’, [#]은 ‘보통휴지포즈’, [//]은 긴휴지의 기호라는 것을 밝힌다.

주격조사 다음에 휴지를 두어야 하는 것은, 포즈의 기본 원칙. 하지만 이번엔 휴지를 주지 말고 이렇게 읽어보자.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반휴지를 두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를 읽어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주격조사 ‘가’와 ‘방’ 사이에 휴지가 있을 때와, 그냥 붙여 읽었을 때에 그 시간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붙여 읽었을 때 조사 ‘가’와 ‘방’ 사이엔 굴곡이 전혀 생기지 않으나, 반휴지를 주었을 땐, 굴곡이 생긴다. 하여 반휴지를 ‘억양휴지’라고도 한다. 둘의 차이를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예를 한 가지 더 든다. “나는/학교에갔다”와 “나는#학교에갔다, 나는//학교에갔다”를 이어 읽어보며 차이점을 느껴보자. “나는#학교에갔다, 나는//학교에갔다”에선, 주격 조사 뒤 학교의 ‘학’이 높은 음에서 출발하는 반면, “나는/학교에갔다”에서처럼 반휴지를 두었을 때는, ‘학’이 조금 아래에서 출발해 올라가는 ‘억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자연 상태에서의 발화에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인위적 읽기에선 그리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와 훈련이 필요하다. 연극의 대본 읽기에서든, 시낭송에서 읽기 과정에서든 모두 마찬가지다. 

음절·단어·어절·구·행·연 사이에 자리 잡은 쉼의 길이는, 동일하지 않다. 각기 다른 쉼은, 각각 다른 분별과 판정과 반성과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어(詩語)에는 저마다의 울림이 있다.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로 선택된 단어 하나하나에는 물론이고, 맥락 속에서 새로워진 의미가 담긴다. 거기엔 분명 어떤 득의와 근심과 회피와 무관심 같은 생각과 정조가 깃들었다. 우리가 문자 텍스트를 단순하게 ‘음성적으로만 실현’해서는, 그 정조의 울림에 가닿을 수 없다. 자연스러운 쉼과 울림의 질서와 흐름을 타야 한다. 쉼은 지속을 통해 의미를 얻고, 지속은 울림을 얻을 때, 그때 비로소 풍부하게 의미가 구현된다.  

자연스러운 낭송을 하려면 소리에 민감해야 한다. 특히 낭송가는 자신이 어떻게 말하는지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에게 있어 말이란 ‘예술의 도구이자, 예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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