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의암 류인석 선생의 묘역(춘천시 남면 충효로 1503)은 강원도 기념물 제74호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의암 류인석 선생은 1842년 춘천 남면 가정리에서 출생하여 당대 위정척사 사상의 거유인 화서 이항로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895년의 을미사변과 변복령,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복수보형(復讐保形-국모의 원수를 갚고 훼손된 전통을 회복한다)의 기치를 내걸고 무장 항일투쟁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충북 제천을 근거지로 항전을 전개하였으나 관군의 압박으로 실패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의병 재기를 위해 인재양성과 동포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의암 선생 묘소에서 내려다 본 사당, 기념관 등의 모습

1907년 고종 퇴위, 정미7조약 체결,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내외에 분산된 항일의병세력을 하나로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910년 6월 21일 무장 항일의병 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이 조직되고 도총재에 추대되어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22일 경술국치를 당하자 무장 항일투쟁 계획을 변경하여 외교적 반대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하고 대표에 추대되었다.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한 새로운 방향 모색과 독립운동 근거지 구축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다가 1915년 74세를 일기로 중국 요녕성에서 순국하였다. 타국에 안장되었다가 1935년 4월 12일 가족과 제자들이 유해를 수습하여 현재 묘역이 있는 춘천시 남면 가정리로 반장(返葬)하였다. 

1962년 선생은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복장(현 대통령장)을 추서 받으면서 항일의병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부터 묘역 정비사업을 추진하였고, 1997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해 2004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85,895㎡의 부지에 묘역, 사당, 기념관, 수련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년 4월 12일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향 행사인 의암제가 묘역 일원에서 열리고 청소년 대상 나라사랑 교육이 연중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묘역이 시내와는 다소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춘천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꼭 찾아보아야 할 나라 사랑의 성지이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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