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국제슬로시티 가입 신청서 제출…승인까지는 1년 정도 걸려
다양성·인간성·환경의 가치 지향하는 마을공동체운동…기준 엄격
관광브랜드로 접근한 장흥군은 재인증에 실패…타산지석 삼아야

춘천시가 국제슬로시티 가입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지난 14일 춘천시청 대회의실에서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국제슬로시티가입을 위한 설명회가 열렸다. 춘천시는 이달 안으로 승인서(가입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며 모든 심사를 마치는데 통상 1년 정도가 걸린다고 밝혔다.

국제슬로시티는 전 세계 도시들 중에서 다양성과 인간성, 환경 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도시연맹이다. 명목상 가입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다소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지는 연맹이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연맹에서 강제로 퇴출당할 수도 있다. 전남 장흥의 경우 2013년 아시아 최초로 재인증에 실패해 퇴출당한 바 있다.

악양면 정서리의 돌담길. 2009년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하동군 악양면이 국내 5번째로 슬로시티로 인증 받은 후 10년 만인 지난해, 하동군 전체가 슬로시티로 등록됐다. 사진 제공=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의 돌담길. 2009년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하동군 악양면이 국내 5번째로 슬로시티로 인증 받은 후 10년 만인 지난해, 하동군 전체가 슬로시티로 등록됐다.       사진 제공=하동군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의 시장인 파올로 사투르니니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미국에서 건너온 패스트푸드가 유럽을 강타하기 시작했고 유럽인들은 패스트푸드에 대항하기 위해 ‘슬로푸드 운동’을 벌였다. 빠르고, 간편하고, 획일적인 음식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고 다양한 음식을 지키자는 운동이었다.

파올로 시장은 이러한 슬로푸드 운동의 특성을 도시에 적용했다. 키안티 시의 바로 옆에는 대도시인 피렌체 시가 있는데 키안티 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건설하자 오히려 사람들이 피렌체 시로 대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올로 시장은 작은 도시가 살아남는 방법은 대도시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개성과 전통을 지키는 것임을 깨닫고 슬로시티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30개국 262개 도시가 가입돼 있고 한국에서도 신안, 완도, 담양 등 16개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해 슬로시티의 가치에 함께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의 강연자 중 한 명이었던 장희정 (사)한국슬로시티본부 사무총장은 “춘천의 시정 방향이 이미 슬로시티의 가치관과 공통분모가 많다. 바람길 녹지축 구축이나 쓰레기 없는 춘천 만들기, 지역 먹거리산업 육성 등이 그렇다. 이제 앞으로 국내·외 심사가 이어질 텐데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로 진행된다. 도시의 개성과 다양성, 전통을 많이 보여줄수록 좋은 평가를 얻는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첫 슬로시티인 미덴 델프란드. 방문객에게 환경, 경관 외에도 이 지역만의 산물을 최고의 품질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즉 슬로시티=최고의 품질 브랜드가 목표다. 사진 제공=한국슬로시티본부
네덜란드 첫 슬로시티인 미덴 델프란드. 방문객에게 환경, 경관 외에도 이 지역만의 산물을 최고의 품질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즉 슬로시티=최고의 품질 브랜드가 목표다.       사진 제공=한국슬로시티본부

실제로 평가항목에는 ‘에너지·환경 정책’, ‘인프라 정책’, ‘도시 삶의 질 정책’, ‘농업, 관광 및 전통예술보호 정책’, ‘방문객 환대, 지역주민 마인드와 교육’, ‘사회적 연대’, ‘파트너 쉽’의 7개의 항목이 들어 있었다. 대항목을 각각 구체적인 평가가능항목으로 다시 나눈 결과 72개의 세부항목이 도출되었다. 세부항목에는 예를 들어 ‘재생가능자원을 이용한 공공에너지 생산현황’,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공공건물 진입, 자전거길 현황’, ‘지역생산품 판매 공간 마련’, ‘지역문화행사 보존 및 가치 증진’, ‘방문객 환대’, ‘공영주택’, ‘친환경 슬로푸드 및 전통음식 장려에 힘쓰는 단체와의 업무협력’과 같은 평가기준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가기준을 만족시켜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하게 되면 상품이나 산업, 자본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리듬이 삶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함정이 없지 않다. 슬로시티의 가치가 실현된 도시에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해 쉼을 얻고 돌아가지만 이러한 현상에 고무돼 슬로시티를 관광브랜드로만 접근할 경우 부작용이 따르기도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전남 장흥이 전형적인 예다. 장 사무총장이 장흥의 재심사 탈락 원인에 대해 밝힌 당시 인터뷰를 살펴보면 ‘서류상의 사업성과는 화려하지만 실제적 운동이 없었다는 점’, ‘슬로시티를 관광사업으로 인식해 관광 인프라나 관광객을 맞이하는 사업에 치중했다는 점’을 탈락의 주요 사유로 들고 있다. 슬로시티운동은 관광이 아니라 일종의 마을공동체 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내용이다. 즉 도시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고 이러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부수적 효과라는 것이다. 현재 춘천에서도 슬로시티 사업을 관광과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장흥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가치와 방향이 변질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슬로시티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시민들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관광과 김남현 주무관은 “승인서 제출을 위해 공무원 대상의 설명회가 열렸다. 2월 중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슬로시티의 가치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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