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정부가 국제슬로시티 가입하려는 원서를 이달 안으로 제출하고자 밝히면서 지난 14일 (사)한국슬로시티본부 관계자들이 와서 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를 가졌다. 결과는 올해 말이나 되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잘 하면 좋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근본적인 사고의 변화 없이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안 하니만 못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슬로시티 운동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자면 여러 각도에서 많은 내용을 건드려야 하겠지만 최대한 단순화하자면 ‘느림’의 가치를 중시하는 움직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슬로시티 운동의 발단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1999년 슬로시티 운동이 시작된 배경은 당시 미국에서 건너 온 대기업형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예로부터 2~3시간 정도에 걸쳐 점심을 먹는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보기에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대자본의 힘에 밀려 기존 식당이 폐업하게 되고 어린이와 젊은 층의 입맛이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게 될 경우, 나라 전체가 패스트푸드 천지가 되어 자신들이 그간 누려왔던 ‘먹는 즐거움’을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다양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해가면서 먹고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자리가 주는 즐거움을 잃은 삶이 얼마나 황폐할 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레베 인 키안티라는 도시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슬로시티 운동으로 확대되었지만 이탈리아에는 여전히 슬로푸드 자체를 궁극의 목표로 하고 있는 도시가 있다. 브라라는 도시인데 슬로푸드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본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미식과학대학교(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가 도시 안에 존재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지역·사람·먹을거리 간의 연결 관계에 주목해 ‘선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정도이면 슬로우푸드 운동이란 단순히 음식을 천천히 먹자는 움직임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철학과 문화와 관련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과연 대한민국 사회가, 춘천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에는 전남 신안군을 비롯해 16개의 시·군이 국제슬로시티에 가입해 지정도시로 인정을 받고 있긴 하다. 강원도에서는 영월군이 지정도시로 가입해있다. 김삿갓면이 보유하고 있는 고씨동굴 및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와 이 지역에서 나는 청정한 농산물이 지정 배경이었다. 이런 정도로 만족한다면 춘천이 지정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여기서 그친다면 그리 크게 기대할 내용도 못 된다. 지정이 되면 1년에 2천만 원의 운영비를 납부하는 정도의 부담만 지면된다고 하니 금전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정작 이런 의미 있는 운동이 춘천시민들에게 그렇고 그런 구호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바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속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자본가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이익의 양이 늘어나도록 구조화되어있는 탓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계급적 특성도 무한 속도 경쟁의 주요한 추진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슬로푸드 문화가 만연해있는 슬로시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만들어내면 좋을 일이므로 제대로 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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