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당장 오는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에 고3 학생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이에 대해 청소년단체와 진보 교육계에서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환영한 반면 보수성향의 교육단체는 학교가 정치판이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보수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고등학생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게 돼 면학분위기가 깨지고 학생이 선거법을 위반하게 될 수도 있다”며 학생 지도 및 정치활동에 대한 ‘세심한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연령 하향을 주장해온 청소년단체와 진보 교육계에서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권리가 청소년에게만 예외적으로 박탈됐던 것이라며 “학교는 지금보다 더 정치적인 공간이 돼야 하며 가장 삶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을까? 시나브로 학생들은 정치적 동물로 크고 있는데 정치교육을 받지 못한 기성세대들만 그들을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대한적십자사의 모금 방식에 의문을 품은 고등학생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국가가 국민의 개인정보를 적십자사에 제공하고 적십자사가 정보를 바탕으로 지로용지서 형태로 마치 세금을 독촉하듯 회비 납부를 독촉하는 행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198개 적십자사 회원국 중 집집마다 지로 용지를 배포해 회비를 모금하는 나라가 대한민국뿐이라고 한다. 몇십 년 동안 선거권을 행사해 온 일반 국민들에게 고등학생들이 알려준 부끄러운 사실 중 하나였다. 적십자회비가 의무납부인지 아닌지에 대해 잘 모르는 우매한 유권자들을 상대로 대한적십자사가 기부금을 회비로 지칭해 많은 국민들을 온순한 적십자회의 우리 안에 가둬 놓고 마치 회원인양 길들였다는 뜻이다. 

서울 인헌고 최인호 학생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국내에서 반일(反日) 분위기가 고조되던 지난해 10월 교사들이 교내 마라톤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를 외치도록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올리며 ‘교사들의 정치 편향 교육 실태’를 폭로(?)했다. 그가 올린 영상에 등장하는 여학생의 초상권 침해, 명예 훼손 등과 관련해 그는 학폭위에 회부돼 징계 조치를 받았다. 그는 교사들의 교육 실태를 폭로한 것은 법률상 ‘학교 폭력’에 해당하지 않고, 인헌고 측이 심의·결정에 관한 권한을 넘어섰다며 행정법원에 징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반일 구호’가 정치사상 편향 교육이라는 낭랑 18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이미 울짱의 오른쪽을 서성이는 정치적 동물로 크고 있다는 사실은 봐줄 만하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는 지난 1년의 시간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세계 환경운동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이는 푸르디푸른 열여섯 살의 그레타 툰베리였고 1인당 GDP 순위(2018년 기준) 세계 17위 핀란드의 국민들이 선택한 지도자는 서른넷의 산나 마린이었다. 온 세계가 젊어지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노령화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질서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18세는 ‘낭랑’하지만 여전히 교육의 대상일 뿐이다. 그 나이에 이를 때까지 인문적 소양을 훈육하지 못한 가정과 정치적 소양을 가르치지 못한 기성세대의 반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참에 교육감 선거연령도 만 16세로 낮추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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