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도 다양한 문화 중의 하나로 남아야죠"
전국기능대회 2위 지면성 대표, 이발소만의 스타일 활성화 기대

성일이용원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오래된 인테리어, 오래된 장비, 오래된 단골손님들…, 모든 게 처음 그대로인 듯 보인다. 변치 않는 것에서 우러나는 편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손님 몇 분이 오셨는데 다들 오래도록 알고 지내온 단골이었던지 편안하고 여유로운 대화가 오간다. 대부분은 일상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성일이용원은 동네쉼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Q.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이발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A. 젊은 친구들은 아마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 어렸을 때는 다들 사는 형편이 어려웠어요. 중·고등학교 진학조차 힘들 만큼. 그래서 양장점, 양화점, 세탁소, 전파사 같은 기술을 배워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죠. 8남매 중 막내였던 나도 중학교에 합격은 했지만 못 갔지요. 그래서 1964년, 외사촌 매형이 운영하시는 이용원에서 기술을 배웠죠. 그 이용원이 소양로2가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지면성 대표
지면성 대표

Q. 요즘은 뷰티아카데미나 이용사학원을 다니는데, 그 당시의 이발 기술 배우는 과정은 어땠나요?

A. 밑바닥 일부터 했어요. 청소하는 것부터 차곡차곡 단계별로요. 세발(머리 감기기), 면도, 정발(드라이), 커트 순으로 배워나갔지. 처음에는 뭘 몰라서 많이 혼났어요. 바닥을 쓸 때도 머리카락을 한군데로 모아서 해야 하는데 난 여기저기 사방으로 쓸었거든.

Q. 이용원에서 받는 대우는 보통 어땠나요? 월급이라든지.

A. 첫 봉급이 200원이었는데 1년 다니니까 100원 올라서 300원을 받았어요. 버스비가 1~2원 하던 시절이니까 100원도 꽤 큰 금액이었지. 2년 정도 일하고는 요선동의 ‘제일이용원’에 들어갔어요. 거긴 일을 더 줘서 좀 더 빨리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돈도 일당으로 500원씩이나 받았어요. 괜찮았지.

Q. 견습생으로 시작해서 정식으로 이발사를 직업으로 갖게 된 때는 언제였나요?

A. 요선동에서 2년 더 배웠고, 1968년에 지금의 제일백화점 자리에 있던 국도이용원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리고 그해 10월쯤 면허증을 취득했지. 국가기술자격증인 이발사 자격증을! 1964년에 이발 일을 시작해서 4년 만에 면허증을 땄으니 굉장히 빨랐지. 보통 5~6년은 배워야 이발사가 될 수 있었으니까. 면허증이 생기자마자 “내일부터는 너도 직원이다. 이제는 너도 똑같이 수입을 나눠 갖는다”면서 승진을 시켜줬어요. 그 때는 매출이 10만원이면 사장님이 절반인 5만원을 가져가고 남은 5만원은 직원들이 나눠 가졌어요. 그렇게 첫 봉급을 7천 원 조금 넘게 받았던 것 같아요. 큰돈이었지. 그 기념으로 기분 좋게 닭갈비를 쐈어요. 다들 양껏 먹었는데도 돈이 많이 남았더라고.

성일이용원의 내부. 지 대표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성일이용원의 내부. 지 대표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Q. 전국기능대회 나가셔서 신문에도 나고 유명해진 이야기 좀 해주세요.

A. 1969년도 제1회 강원지방기능대회에 출전하게 됐어요. 지금의 약사동사무소 자리에서 대회가 열렸죠. 정말 많이 연습해서 나갔는데 시험 도중에 드라이기 선이 끊어져버리는 바람에 시간 초과로 실격이 된 거예요. 너무 아쉬워서 다음해 2회 대회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어요. 커트를 하면 커트머리가 아주 단정하게 잘 나오던 친구가 있었는데 다행히 그 친구 머리로 연습을 할 수 있었죠. 오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근무를 해야 하고 퇴근 후에 집중적으로 연습했어요. 거의 매일 그러니까 어느 날은 코피가 나더라고요. 그 정도로 독하게 해서 2회 대회에 나갔죠. 50분 안에 커트, 면도, 세발, 정발까지 다 해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는데,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고 운 좋게 2등을 했어요. 3등 안에 들면 전국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져서 연습을 계속했어요. 전국대회는 서울에서 열리는 거라 나처럼 지방 출전자들은 자신의 모델을 데리고 가지 못했죠.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결과인지 2등을 했어요. 그 때 《강원일보》에 인터뷰 기사도 실렸지요. 상패와 메달은 가게에 두었고 상장은 너무 커서 걸어놓지를 못했어요. 상금 3만 원은 여기저기 한턱 쏘다보니 안 남더라고요. 불고기백반이 250원 하던 때인데. 하하하.

Q. 이발소만의 장점과 특별한 점이 있다면요?

A. 무엇보다 이발소는 단정함과 깔끔함을 추구하고 면도를 하기 때문에 보다 더 디테일함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발소의 스타일은 상고, 장교, 스포츠로 나눌 수 있는데요, 큰 변화 없이 심플한 스타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요. 다만 직업 특성상 주말에 쉬지 못해 집안일 혹은 지인 경조사가 있다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해 아쉬웠죠. 그것 말고는 단점이 딱히 없어요.

Q. 성일이용원은 사장님께서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하신 곳이라고 들었어요. 이곳의 역사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듣고 싶어요.

A. 요선동 춘천탕 바로 옆 백금이용원에서 한 8년 일하다가 1991년 친구가 운영하던 이용원을 인수하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성일이용원이에요. 예전 상호명은 광신이용원이었는데 내가 맡으면서 이름을 바꿨죠. 내 이름 끝에 ‘성’자를 따서 ‘생애 처음 이용원’이란 뜻으로 지은 거예요. 그 이래로 지금껏 직원 없이 혼자하고 있어요. 내 이발소도 시설만 조금 바뀌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죠.

지면성 대표가 손님들의 머리손질을 위해 사용하고있는 가위. 30년 성일이용원의 연륜이 묻어보이는 듯 하다.

Q. 성일이용원 운영은 순탄했는지요? 화려한 수상 경력자라 단골손님이 많았겠어요.

A. 처음 가게를 오픈하고는 잘 풀렸어요. 딸이 국악 예술을 공부해서 돈도 많이 필요했는데 꽤 괜찮았죠. 그런데 미장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발전하면서 이발소 손님이 많이 줄게 된 거죠. 사우나까지 생기고, 또 그 안에 이용원이 들어가면서 동네 이발소들은 더 많이 힘들어졌죠. 지금은 이용원이 많이 힘든 상황이에요. 기존 단골손님들도 연세가 많으신 터라.

Q. 성일이용원에서는 하루에 몇 분에게 이발 서비스를 제공하시나요. 비용도 궁금하네요.

A. 이발과 면도, 세발, 정발까지 하면 한 30~40분 정도 걸리죠. 하루에 많게는 스무 분 내외, 평균 열 분 내외라고 보시면 됩니다. 요금은 예나 지금이나 이발사협회에서 권고하는 가격으로 받아오고 있어요. 현재 1만2천 원인데 지난해 8월에 인상된 가격이죠. 다만 이발소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답니다.

Q. 사장님 그리고 성일이용원, 저도 응원할게요.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뭐, 다른 건 없어요. 이발소가 사라지고 있는데 예전만큼은 바라지 않더라도 다양한 문화의 하나로 살아남고 대중화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동네 이발소가 활성화되면 좋은 일도 많아질 겁니다. 젊은 분들도 한번쯤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제 가게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꼭 와주실 거죠?

‘헤이브로 바버샵’ 장정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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