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춘천을 읽다] ‘봄, 1980-춘천·11’ - 최준
[시인 춘천을 읽다] ‘봄, 1980-춘천·11’ - 최준
  • 금시아(시인)
  • 승인 2020.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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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시인)
금시아(시인)

갈수록 봄이 다급해지고 있다. 한겨울인데도 포근한 겨울비에 남쪽에서는 성급한 매화꽃이 업로드된다. 문득, 하 수상했던 시절의 어떤 봄이 눈을 뜬다. 최준 시인의 ‘봄,1980’, 화창했지만 너무도 춥고 아팠던 그의 봄으로 되돌아가보자.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T.S 앨리엇 ‘황무지’). 1980년, 먼 광주에서 청춘들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멀리서 깨어 있는 어린 시인은 5·18을 이야기한다. “하찮은 혁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참 많이도 기뻤을” 것이라며 아파하고 고뇌한다.

최준 시인은 강원도 정선 태생이다. 민주화운동이 요동치던 1980년 5·18 광주 항쟁 시기에 시인은 춘천에서 유학생활 중이었다. 모든 상황이 결코 녹녹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춘천은 시인에게 어떤 곳이고 무엇이었을까? 그가 아파하고 고뇌했던 청춘의 봄, 그 붉은 꽃망울들 멍울져 있는 최준 시인의 봄 상자를 열어보자.

민란이나 항쟁은 늘 청춘에서 점화되었다. 먼 도시의 청춘들이 피로 물들고 있을 때 유학생활을 하던 어린 청춘은 함께할 수 없는 혁명의 변방, 먼 춘천에서 그저 시리고 아픈 마음으로 밤을 지새운다. 

 

“스승은 그때 알고 계셨나요” 먼 곳의 자유화 운동처럼 “신념과 개벽은 아주 먼 사이라는 걸”? 너무 빨리 자라고 너무 빨리 죽어간 비극들은 어떻게 서로 만날까? 어린 청춘의 술국과 막걸리는 왜 이리도 알싸할까? 

봄내골의 봄이 혁명처럼 알싸한 데는 까닭이 있다. 시인은 5월 혁명의 변방에서 밤을 지새우지만 예부터 춘천은 거란족과 몽골족의 침입, 임진왜란, 그리고 한국동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처절한 전투의 지역이었고,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남겼다. 특히 몽골의 침입 때에는 봉의산을 지키며 항쟁하던 관군 그리고 주민들까지 모두 몰살당했다. 또한 춘천 의병들은 꽃물 같은 피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시인이 고뇌하고 있는 공간 요선동은 1910년 춘천에서 처음으로 생긴 요선시장으로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렇듯 춘천에는 역사의 숱한 비화와 애환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봄내골 곳곳에는 이 땅을 목숨으로 지키던 선조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봄 1980’ 그해, 최준 시인이 다가올 청춘에게 꽃잎 띄운 막걸리 잔을 건넨다. “우리, 다시 만날까요” 아주 먼 거리였던 1980년 광주는 이제 곁입니다. “다 자라 다 죽고 나서” “더 이상은 비극 아닌” 그날처럼, 어린 시인이 아파하고 고뇌했던 불꽃처럼, 청춘은 뜨겁고 두렵고 고독합니다. 

불꽃들 슬프도록 어둑하고 눅눅한 요선동 그 막걸릿집,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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