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지난 연말 성탄절 오후, 서점에 들러 나를 위한 선물로 책 한 권을 샀다. 《아름다운사람 권정생》. 《강아지똥》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화작가의 삶이 담긴 책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정기구독 시켜주신 어린이잡지 《새벗》에서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의 책 《꽃님과 아기양들》에 그려진 가난과 서러움에 나는 어렸지만 많이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쓴 사람이 궁금했다. 《새벗》 잡지에 기사로 등장한 권정생 선생님은 그래서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의 집은 내 눈에도 초라했다. 그는 동화 속 분이, 용이처럼 여전히 가난해 보였다. 그와 가난을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낡은 문살에 창호지 바른 방문을 열고 환하게 웃고 있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종탑, 강아지, 그리고 선생님의 고무신….

2007년 그는 다시는 병으로 고통받지 않을 하늘나라로 떠났다. ‘꽃님과 아기양들’이 《슬픈나막신》으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출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새벗출판사의 《꽃님과 아기 양들》을 갖고 있다. 

2018년 가을 지역서점에서 권정생 문학기행 공지를 보았다. 하루 휴가를 내어, 아이와 함께 참가했다.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사시던 그때, 열두 살쯤의 나는 《새벗》 잡지 기사에서 알아두었던 일직교회로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선생님도 나도 무척 쑥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문학기행으로 방문한 선생님의 집은 빌뱅이 언덕에 흙으로 지은 5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집이었다. 일직교회 문간방보다 나을 것 없는 그 집에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작은방에 낮은 책상이 있고, 마당에는 불 때는 아궁이가 있는 깊은 부엌, 재래식 변기 하나 크기의, 구멍 숭숭 뚫린 화장실이 있었다.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지만 집은 사시던 모습 그대로였다. 돌아가시던 때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동화작가였고, 선생님의 그림책, 동화책들은 베스트셀러에 늘 끼어있었다. 멀리서 별세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까지 그런 집에서 사셨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최소한 평범한 살림집 규모에서는 사실 거라 막연히 생각한 것이다. 

성탄선물로 선택한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에는 그의 가난, 병의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나들이옷 한 벌이 없어 시상식장에 가기를 주저해야 했고, 얼마간 인세가 들어오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먹거리를 들이고, 아낌없이 나누었다. 유명한 작가가 되었을 때에도 그 삶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빌뱅이 언덕 흙집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교사들, 부모들, 여러 후원자들과 교육공동체로서의 어린이집을 함께 세우고 가꾸며, 이 공동체를 우리 지역에 확산시키는 꿈까지 꾸며 몇 년을 살아왔다. 함께하는 이들은 얻어지는 어떤 이득이 없어도 기꺼이 시간과 품을 나누었다. 꿈이 현실로 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왔지만 나에게 몇 달째 이어진 경제적 결핍은 마음을 모질게 만들었다. 시간이 해결할 일이었음에도 빈곤은 눈을 멀게 하고, 함께 해온 이들을 아프게 하는 말들을 하게 했다. 

내 수고는 쉽게 헤아리고 손잡은 이들의 희생은 쉽게 잊는다. 12월 마지막 날 다시 만난 권정생 선생님의 삶은 그런 내게 큰 경종이 되었다. 가난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할 만큼 모든 것이 여전히 넉넉한 삶에서 잠깐의 결핍을 힘들어하며 주변에 서운함을 토로한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헤아려보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많이, 더 새로운 것을 갖으려고 구실을 만든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권정생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 

감히 그의 삶에 비길 수는 없지만 그를 바라보며 나를 추스른다. 가진 것으로 이미 너무나 충분함을 잊지 않아야지. 내가 내려놓은 사소한 것으로 손잡은 이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지. 빌뱅이 언덕 흙집에 비하면 모든 것이 지나치게 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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