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은 본래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할 목적으로 만든 축조물로,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부도(浮屠)와 차별성을 지닌다. 불교가 융성하면서 석가모니의 사리뿐만 아니라 불교 경전이나 불상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춘천칠층석탑은 소양로 한복판에 서 있는데, 어느 시대 어느 사찰의 탑이었는지 불분명하다. 

왼쪽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모습 (《조선고적도보》수록) . 오른쪽은  2020년 소양로에 위치해 있는 현재의 모습 

《춘천읍지》 등 여러 지리지에 봉의산 서쪽에 충원사(沖圓寺)가 있었다는 언급과 조선 인조 때 유정립(柳鼎立)이 터를 닦다가 ‘신라충원사(新羅沖圓寺)’라 적힌 불기(佛器)를 근처에서 얻었다는 기록을 통해 충원사의 경내에 있었던 탑으로 추정될 뿐이다. 2층 기단과 7층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까지는 6단이고 4층 이상은 5단을 이루고 있다. 6단의 지붕돌 받침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석탑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받침 부분의 구성 방식이나 굄돌의 조각 등 세부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춘천읍서칠중석탑’, ‘춘천요선당리칠층석탑’으로 불렸다. 춘천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당시에 이미 이전하려는 논의가 있었다. 한국전쟁과 1955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심한 손상을 입어 1969년에 보수했고, 2000년에 다시 전면적인 보수공사와 함께 근처로 이전하였다가 도로 확장으로 인해 2018년에 현재의 위치로 또 한 번 옮겨지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조선보물 제117호로 지정될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해방 후 1963년 보물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있는 근화동 당간지주와 600m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강원도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좀 더 세밀한 발굴과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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