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카페에 머물며 글쓰기를 즐겨한다. 카페가 사계절 모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젖어 들어 애초 의도와는 다른 더 좋은 생각들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감각적으로 보면 카페는 오감이 충분히 즐거운 공간이다. 시각, 청각적인 즐거움이 있지만, 미각과 후각까지 상쾌한 즐거움을 준다.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매개는 당연히 커피이다. 공간 가득 커피 향으로 채워져 있는 카페에 들어서면 마음조차 각성하기 시작한다. 커피 잔에 입술을 대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라고 노래한 한용운 시인의 시가 얼핏 감각되는 순간이다. 

커피를 부르는 매혹적인 영화들이 있다. 쉽게 떠오르는 고전적인 영화가 《바그다드 카페》(1993)이지만, 사실 커피를 유혹하는 영화의 원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2)이다. 여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이 한 손에 크루아상을 들고 다른 손에 커피 잔을 든 매혹적인 장면은 심하게 우리의 커피-심(心)을 자극한다. 

영화 초기에는 담배 회사들이 제작 자금을 대면서 대대적인 PPL(Product Placement, 제품 간접광고)에 열을 올렸다. 멋진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일부러 삽입해 담배 매출을 급증시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담배 피우는 장면에서 배우가 괴로워하거나 각혈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전히 우아하고 멋진 자세가 화면 그득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커피로 중심 초점이 옮겨졌다. 우리나라에 폭발적으로 카페가 늘어나고 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난 것은 영화의 힘이 매우 크다. 야외의 멋진 공간은 대부분 카페가 차지하고 있고, 배우들이 데이트하는 장면에서 카페 신은 의례적으로 삽입된다. 보다 보면 불쑥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카페에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대만에 카페 열풍을 몰아온 것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2011)이다. 이 영화는 차(茶) 문화에 익숙해서 절대로 커피로 취향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 중국인들의 마음과 습관을 바꾸어 놓았다. 일본의 경우는 일찍부터 커피가 들어왔지만 급속하게 붐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일본인의 정서답게 조용히 밀려들어 가서 자리를 잡았다. 

《세상 끝에서 커피 한 잔》(2017)은 일본 커피 문화의 절정을 보여준 영화이다. 이전에 여러 커피나 카페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나 특유의 장인정신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세상 끝에서 커피 한 잔》은 많은 도시 사람들에게 바닷가에서 카페를 하며 여생을 보내는 걸 최고의 꿈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영화 《더 테이블》(2017)은 우리 정서를 잘 반영한 수작이다. 조그마한 카페 안에 있는 한 개의 테이블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 자리에 앉았던 여러 사람의 관계 이야기를 풀어놓은 정적이지만 파격적인 영화다. 

우리에게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물을 연결하는 향기로운 매개로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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