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미국을 움직이는 중요 인물들이 의회에 모여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듣던 중 테러로 몰살되면서 계승 서열 13위인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 뜻하지 않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민주당원도 공화당원도 아닌 그야말로 정치꾼의 기질이라곤 하나도 없는 학자 출신 관료가 조롱과 염려 속에 백안관 주인이 되어 지천에 널린 정적과 테러 환경에 맞서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리더십을 시험받는 게 기본 줄거리다. 3개의 시즌 속에서 펼쳐지는 그 숱한 재미와 스릴은 접어두고 하나의 에피소드만 공유하고자 한다. 무능한 리더가 닿을 수 없는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다. 

대통령으로서 그럭저럭 잘 헤쳐 나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부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사고 이후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이 발생하자 부통령 주도로 내각 과반이 대통령한테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일종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내각이 마지막 결정을 위해 연 청문회에서 대통령은 최후진술을 한 후 집무실로 돌아와 사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부통령이 최종 결정을 알려주기 위해 들어온다. 내각 과반이 퇴진에 반대했다는 뜻밖의 통보에 대통령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물었다. 부통령이 두 가지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나는 ‘모든’ 대통령 보좌진들의 ‘전적인’ 충성심. 다른 하나는 모든 조언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는 대통령의 ‘변하지 않는’ 성격.

#민주주의: 국정을 책임지는 모든 요인들이 모이는 자리여서 대통령 계승 순위 8위인 데이비드 번하트 내무장관이 지정 생존자 자격으로 불참했던 미국의 올해 국정연설 뉴스는 테러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악수 무시와 펠로시 하원의장의 연설문 찢기로 도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실을 갈기갈기 찢었고, 나는 연설문을 찢었다. 그의 연설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연설문을 찢은 뒤 해방감을 느꼈다”는 펠로시 의장의 말처럼 미국은 연초부터 둘로 쪼개진 채 달리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최초로 제기했다가 탄압을 받았던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병원의 의사 리원량이 부인과 다섯 살 난 아들 그리고 오는 6월에 태어날 아이를 뒤로하고 서른넷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어머니는 “내 아들은 한 밤중에 우한 경찰로 불려 갔다. 그들이 내 아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괜찮아질 수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정 생존자’는 리더의 미덕과 인간 성격의 불변성을 선명한 그림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보스의 고집과 악덕 또한 불변임을 암시한다. 드라마 속 에피소드는 리더가 아닌 보스를 떠받들어야 하는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보스는 강요나 재촉을 마법의 채찍처럼 휘두르면 모든 구성원들이 전적인 충성심을 바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매사에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간섭해야 직성이 풀리고, 반대의견과 제안은 변명과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고, 우유부단하고, 일관성이 없고, 업무 적합도가 떨어지는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강요하는 그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그의 종착역이 리더가 아닌 보스라는 걸 그 자신만 모른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 안의 야성을 다시 깨우고, 황야로 나가라고 그리고 벼랑 끝까지 내달리라고 내 가슴속에서 ‘둥둥’ 울리는 큰북을 되찾은 것은 기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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