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놀이터와 놀이문화에 대한 단상

누구를 위한 놀이터인가

이르면 오는 6월, 동내면 거두리 1115번지에 ‘큰골 어린이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계획대로 잘 조성된다면 ‘큰골 어린이 놀이터’는 춘천의 놀이터와 놀이문화를, 더 나아가 앞으로 춘천시민이 될 어린이들의 의식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놀이터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 보니 접근성, 안전성, 경제성 등을 둘러싼 시민들의 요구를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도 가지각색이다. 모래나 흙은 비위생적이라서 안 된다는 의견도 있고 우레탄을 깔지 않으면 위험해서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물놀이 시설, 페인트 사용, 시설 재질 등등 모두들 다른 관점에서 주장한다.

정작 어른들이 놀이터의 이용자인 어린이들의 입장을 심사숙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3~4세의 어린이들이 왜 그렇게 끝없이 구덩이를 파내며 시간을 보내는지, 또 조금 더 큰 어린이들은 왜 그렇게 염소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다. 제대로 된 놀이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에 대한 이해부터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에게 과연 놀이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위험한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

《놀이의 과학》 저자이자 예술사학자, 큐레이터인 수전 G. 솔로몬은 적절한 수준의 위험이 아이들의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설파한다.

“아동과 청소년은 주변 세상과 그 안의 정서적 관계를 탐구하면서 자연스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는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만큼이나 크나큰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 번도 위험을 경험해 보지 않은 아이는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위험과 마주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아니면 부모가 둘러쳐 놓은 거미줄을 걷어차고 위험할 정도로 반항할 수도 있다.”

저자는 만약 어른들이 단순히 아이들의 신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에게 아무 놀이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구경만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험이 높아지면 더 많은 도전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협동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놀이터 기능이 멈춘 지루한 놀이터

국내의 대표적인 놀이운동가이자 놀이터 디자이너인 편해문 선생의 의견도 동일하다. 그는 세상에는 ‘안전을 우선하는 제한적 놀이터’와 ‘자유를 추구하는 허용적 놀이터’ 두 종류가 존재하는데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성장단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안전제일주의’를 추구한다고 지적한다. 유치원생이 놀기에 적합한 놀이터에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몹시 매혹적인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공간을 지루하게 느낀다면 그곳은 놀이터의 기능이 사실상 멈춘 곳입니다. 한국의 그 많은 놀이터가 아이들에게 외면받는 까닭입니다.”

그는 위험의 개념을 두 가지로 나눈다. 유리병, 녹슨 난간 등 제거되어야 위험은 점검하고 제거해야 할 위험이지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고, 조심할 수 있는 위험은 이따금 아이를 다치게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험해야 할 ‘살아있는 위험’이라고 정의한다.

위험을 즐기는 안전한 놀이터

독일의 놀이터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는 《놀이터 생각》이라는 책에서 안전한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안전한 놀이터는 모든 위험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쇠사슬 이음새의 마감’, ‘나무 난간을 연결할 때의 틈새’, ‘하늘다리를 만들 때 어린이들 보폭에 맞는 너비’ 등 어린이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하고 무엇이 안전한 방법인지 제시한다. 위험한 놀이터는 어린이를 위험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자유롭게 위험을 즐길 수 있도록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3종 세트’에 갇힌 놀이터

춘천의 놀이터는 어떨까? 이제 춘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아쉽게도 여태까지의 놀이터는 틀에 박힌 이른바 ‘놀이터 3종 세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푹신푹신한 우레탄 바닥 위에 놓여있는 ‘그네’, ‘시소’, ‘미끄럼틀’이 그것이다.

과연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놀이를 할까? 석사동의 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많이 찾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 가량을 지켜봤다.

먼저 눈에 띈 것은 학령이 높은 아이일수록 활동량이 적고 많이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놀이터는 단지 집결장소의 역할만 할뿐이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게임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왜 놀이터에 와서 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대답을 했다.

“시시해요~”

금지’한 놀이만 좋아하는 아이들

놀이에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놀이전문가들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고학년 어린이들은 그네, 시소, 미끄럼틀보다는 온라인 게임에서 그나마 가상의 위험과 스릴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그보다 조금 더 학령이 낮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였다. 저학년 아이들은 나름대로 놀이터의 기구를 이용해 놀았다. 하지만 거기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금지’한 놀이만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가령 ‘위험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쓰인 원통형 미끄럼틀 지붕에 올라가 걸터앉아 논다든지, 시소 위를 서서 왔다갔다가하며 균형을 잡는다든지, 그네를 서로 맞부딪히며 탄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별로 있지도 않은 위험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노라니 그동안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보다 더 나이가 적은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공통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이터를 즐겼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다른 놀이기구보다 유독 그네가 인기를 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다. 이런 현상을 놀이전문가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그네, 시소, 미끄럼틀은 모두 ‘추락’이라는 공통된 위험을 체험하는 것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지속적인 ‘추락’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네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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