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지난 2월 9일에서 11일까지 평창에서 ‘2020 평창 평화포럼’이 있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의 두려움을 뚫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관심을 가진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이번 포럼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록을 담은 ‘평창평화의제 2030’이 채택되었다. 또한 한반도 정전상태를 종전으로 바꾸는 동시에 종전을 넘어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실천적 방안, 지속가능한 평화와 경제, DMZ의 생태와 경제적 의미, UN 지속가능 발전목표와 평화의 연계 실천 방안, 남북의 평화적 교류, 평화를 기반으로 한 유라시아 철도 연결과 한반도 신경제 구상, DMZ의 평화지대로의 전환과 전망, 고성군의 유엔평화도시 모색 등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이 논의되었다. 

포럼에서 ‘DMZ 평화지대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전망’이라는 세션의 좌장을 맡았던 필자의 머리에서 개회식 때부터 행사 내내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기억’이라는 단어와 ‘기억의 되새김’이라는 의미였다. 

기억!! 인간은 어떤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넘어 기억을 되새김한다. 아픈 기억마저도 되새김함으로써 미래를 사는 자양분으로 바꾸려고 한다. 세월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힘이 있다. 때로는 세월의 힘을 빌려 아픔을 잊는다. 아픔을 잊기 위해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리고 살면 편하다.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기억을 다양한 형태로 전환하여 되새기는 데 있다. 망각은 인간의 방어기제이지만, 이는 삶을 부초처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부초처럼 만들지 않기 위하여 기억을 다양한 형태로 전환하여 되새김한다.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되살려 미래로 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억은 삶의 뿌리를 찾게 해준다. 아픈 기억이든, 영광스러운 기억이든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려 뼈저린 자성과 발전적 행동의 축으로 삼는다. 기억의 되새김을 통해 새로움을 찾는 존재야말로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초이거나 사라지는 존재가 된다. 아프거나 영광스러운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바로 기억의 되새김과 관련이 있다.

‘2020 평창 평화포럼’은 ‘평화’가 화두였다. 또한 평창은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2020 평창 평화포럼’이 열리게 된 이유는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분단과 그 무게와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1945년 광복에 이어 외세에 의해 그어진 38선, 그 분단선으로 인해 발발한 한국전쟁, 수백만이 죽은 한국전쟁 이후 선이 아니라 면으로 확장되어 한반도의 허리를 잘라버린 DMZ. 

DMZ는 우리가 겪은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다. DMZ에 의해 강원도와 강원도 고성군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철원군 김화읍도 그러한 곳이다. 그리고 DMZ 이외 민간이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하는 민간통제선이 그어져 있다. 강원도는 허리 잘린 이 땅의 아픔을 가장 심하게 체험하고 있는 곳이다. DMZ는 갈등과 적대의 상징으로서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우리는 DMZ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여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재발견하려는 노력과 열정을 더 응축시키고 있다. 나아가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으로서 등재하기 위한 가능성과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DMZ의 아픈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되새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DMZ가 왜 생겨났으며, DMZ에 의해 상징되는 분단의 아픔, 분단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우리의 아픈 과거를 현존의 기억으로 되새김하지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희망찬 미래와 한반도 및 세계의 평화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훗날 통일 이후라도 DMZ는 세계 유산으로 남아 단순히 전쟁이 없는 평화를 넘어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구조적인 억압과 갈등이 없는 진정한 평화를 되새기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