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전입, 전출이 확정되었고 교사들의 전보가 공지되었다. 사람이 나고 드는 2월은 매일 같은 공간이 구멍 뚫린 듯 허전하고, 매일 같은 풍경에 나무 한 그루 베어낸 듯 허전하다.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이별에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스르륵 주저앉는 시간, 문득 연노랑 빛깔 기억되는 이별의 장면이 떠오른다.

부드러운 햇살이 창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공간, 평소답지 않게 말끔한 연노랑의 스웨터를 입은 지앙 선생님, 그리고 웬일로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돈된 공간에서 선생님이 악보를 건네준다.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샤오천이 연주를 마치자 따뜻하게 웃으며 샤오천의 어깨를 두드리는 지앙 선생님이 “참 잘하는구나” 한 마디 칭찬을 입혀주며 이별을 고한다.

2002년에 제작된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 <투게더 Together> 에 나오는 한 컷이다. 

정작 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3악장이 너무나 강렬하게 마음을 강타하지만, 뒤돌아서 오랫동안 마음에 잔잔히 울려나던 음악은 바로 저 장면에 흐르던 프란츠 리스트의 위안 3(Consolations No. 3)이다. 

헝가리 태생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바이올린에 파가니니라는 음악가가 있다면 피아노에는 리스트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피아노 음악에 있어 피아노로 가능한 모든 테크닉을 작품 속에 구현한 작곡가이다.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엘을 다 마치고 나면 손에 들려주는 손가락 연습곡 체르니. 그 작곡가 체르니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우리에게 악의적 작곡가로 알려져 본의 아니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다가온 작곡가 살리에르에게 리스트는 피아노를 사사받았다고 한다. 금발과 늘씬하고 잘 생긴 외모로 인하여 지금의 아이돌급 여성 광팬들을 거느렸던 작곡가 리스트. 그는 러시아의 귀족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과 사랑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함께 살게 된다. 연인과 함께 보내는 나날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남편과의 이혼 요청은 교황청에서 거부되고, 피부병으로 힘들어 하는 후작부인을 바라봐야 하는 리스트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 피아노 독주를 위한 소품집 Consolation(위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 시인 생트 뵈브의 시집에서 가져왔는데 이룰 수 없는 소망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내용이라고 하니, 당시 후작부인과의 사랑에 대한 작곡가 자신의 내면을 위로해주기 위한 선율이기도 했으리라.   

리스트가 종교적인 주제를 다룰 때 주로 사용한 조성이 마장조(E Major)라고 한다. 이 곡의 조성이 대부분 내림라장조(D flat Major)와 마장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니 사랑하는 연인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작곡했을 거라 미루어 짐작한다. 때문에 내밀하고 사색적이며 슬픔과 위로의 깊은 감정이 그려진 이 작품은 ‘6개의 시적인 팡세’라고 불리기도 한다.

1번-기도, 2번-아베마리아, 3번-고독 속의 신의 축복, 4번-죽은 자의 기도, 5번-주의기도, 6번-잠에서 깨어난 아기에의 찬가라는 부제를 붙인 6개의 악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영화에 삽입되었던 3번, 고독 속의 신의 축복이 가장 유명하다. 

겨우내 그렇게도 내리지 않던 눈이 2월에 위안처럼 푸짐히도 내린다. 지상의 모든 것들 위에 깨끗한 빛깔 하나로 내려 순백의 세상이 되는 시간. 마음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생각들을 그렇게 덮어줄 무언가가 필요한 시간. 그래. 음악을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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