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시인)
금시아(시인)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호젓한 카페에서 창밖의 봄과 노닥거리다 눈부신 햇살에 유혹당한 듯 우리는 느닷없이 봄맞이 가자며 자리를 걷어찼다. 이른 봄이라 기온은 쌀랑했지만 눈부신 햇살은 양지바른 곳들을 충분히 데우고 있었다. 지인이 앞장선 곳은 배후령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마적산 자락의 공원묘지였다. 이승훈 시인은 고즈넉한 이곳에서 애증의 고향 춘천을 평온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인은 1942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몇 번을 떠나곤 했던가? 고향이지만 다정하고 따듯했던 추억이 별로 없다는 시인은 2018년 추운 겨울날 고향인 춘천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 

나는 생전의 시인을 뵌 적이 없다. 내가 사진으로 본 시인의 눈은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우울한 촉수로 그는 어떤 세상의 시를 쫓고 있었던 것일까? 맥주와 멸치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우울한 모습이 더욱더 외롭고 고독해 보였다는, 아이러니하게도 까칠함과 유머와 온유를 함께 소유했다는 그는 늘 공부하는 시인이자 시론가로서 춘천이 낳은 큰 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시 ‘춘천을 생각하며’를 쫓아 그의 아리고 불우했던 시인의 고향 춘천으로 들어가 보자. 

“시가 일상이고 시가 시론이고 시론이 일상이다”라고 한 시인의 말처럼 이 시는 아주 일상적이고 쉬운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자유연상기법과 자동기술법으로 시를 쓴다는 그의 시 세계는 쉽게 의미를 쫓으려 하면 버거워진다. 

‘춘천은 내 고향 그러나 한 번도 따뜻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시인은 얼마나 슬프고 불행한가. 어린 시절의 잦은 이주와 불안정했던 가정환경은 고향에 대한 부재를 불러왔고 부정적인 자의식은 그대로 우울과 외로움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다 그립고 좋을 수만은 없겠다. 때론 가장 고통스러운 장소가 되기도 하니까. 이승훈 시인에게 춘천은 그런 곳이었나 보다. 고향에 대한 상실감은 병적으로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면서 안개처럼 아련한 환상과 몽상의 세계로 숨어들게 했을 것이다. 

이제 ‘속물이 다 된’ 나이의 춘천은 그에게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왜냐면 안개 자욱했던 ‘춘천에서 나는 정신의 한량, 추억의 백수, 어두운 시를 쓰던 우수의 건달’의 시기를 잘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겨울 저녁이면 버스를 타고 싯벌건 노을을 향해 떠나’ 간다. 그의 삶에 있어 춘천은 그저 ‘개인 문제’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흐린 가을 둑길’일 것이다. 

한 인간에게 고향은 과연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낭만이고 행복한 추억 가득한 ‘춘천’이 시인에겐 평생 외로워하고 고독해 하며 그토록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었던 고향이라니. 그러나 시인이 도망하고 멀어질수록 춘천은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철학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나 보다. 그 어둡던 환경 때문에 그는 자아를 탐구하게 되고 결국 모더니즘 시 세계를 구축하며 자신을 구원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시인의 춘천에서 유배의식이 읽힌다고 했다, 그렇다면 춘천은 더없이 낭만적인 유배지일뿐더러 철학자로서의 삶을 요구하는 선(禪)적인 도시인지도 모르겠다. 

최동호 시인은 이승훈 시인 영결사에서 그를 이렇게 기렸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모더니즘 시의 선구적인 업적을 이루면서 이상으로부터 김춘수에 이어지는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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