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일반적으로 인간 삶의 기본 요소를 의(衣), 식(食), 주(住)로 정의한다. 이 세 요소가 결합하여 일상(Life)이라는 용어가 생성된다. 인간다움을 생각한다면 의복이 맨 앞에 나서는 게 타당하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적 차원으로 본다면 음식이 앞에 서야 할 것이다. 음식에 관한 영화는 넘쳐난다. 그러하기에 음식 영화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너는 내 사랑이 느껴지니? 난 사랑할 가슴도 없어! 난 예전에 식욕과 의욕이 넘쳤거든 근데 다 사라졌어, 그래서 모든 열정을 회복하고 싶어. 난 15세 때부터 연애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어. 날 돌아볼 시간 따위 없었다고. 나를 잃어버렸어. 이탈리아에서 쉬고 인도 아쉬람에서 명상하고 마무리는 발리에서 하려고.”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대사이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는 인간 삶의 기본 요소가 의식주에서 음식(Food), 자존(Self), 사랑(Love)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음식이다. 물론 현대의 음식 의미가 예전처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아닐 것이다. 이젠 음식도 미학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음식 관련 영화를 보면 대부분 세프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세프들이 몸담은 레스토랑이나 그들만의 요리비법을 소개하는 영화가 많다. 음식에도 조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일본 영화는 《스시 장인: 지로의 꿈》(2011)이나 《카모메 식당》(2006)처럼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요리사 집안의 전통성이나 한 가지 요리에 집중하는 장인정신을 부각시킨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덴마크 영화인 《바베트의 만찬》(1987)이나 독일영화인 《소울 키친》(2009), 맛으로 기억하는 사랑의 맛이라는 카피가 붙은 그리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2003), 스페인 영화 《18번의 식사》(2010)는 음식 자체만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개하려 애쓴다. 

한편 음식의 재료문제부터 접근해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4)나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2015)은 신선한 그리고 생생한 충격을 던져준다. 집안 식물들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시인 고진하, 권포근 부부가 저술한 책 《잡초 레시피》(2015)의 개론서쯤에 해당되는 영화 《식물도감》(2018)도 길가 잡초를 훌륭한 음식으로 재창조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누가 누가 많이 맛있게 먹을 수 있나를 보여주는 TV 먹방 프로그램이나 맛있는 집을 찾아가 소개하는 먹거리 투어 프로그램이 영화에 적용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오히려 《트루맛 쇼》(2011)나 《푸드 주식회사》(2008)처럼 현대인의 식생활과 음식산업에 대한 문제점을 고발하는 영화가 먹방 프로그램의 균형을 잡아주니 너무나 좋다. 

영화는 《GMO OMG》(2013)를 통해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관한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들추어내기도 하고, 《슈퍼 사이즈 미》(2004)나 《파운더》(2016)를 통해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을 고발하기도 하면서 건강한 음식에 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여하튼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은 절대로 용서해선 안 된다. 음식은 우리 삶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