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신상 공개가 결정된 고유정. 하지만 호송차로 법정을 드나들 때마다 마치 커튼처럼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꽁꽁 숨기고 대중 앞에 나온다. 경찰은 강력범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피의자 동의가 있어야 촬영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유권 해석에 제동이 걸렸다. 경찰 공보규칙도 도긴개긴이긴 마찬가지다. 신상 공개 결정이 돼도 강력범이 인권의 우산 아래 숨을 수 있고 국민들은 추가 정보 하나 확보할 수 없는 나라에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나 있을까? 

지난해 12월 21일 저녁 서울 마포경찰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던 현직 검사가 들이닥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여성으로부터 성매매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다음날 검사에게 다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성매매 검사는 출석 요구에 불응해 경찰서에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고, 이른 시일 내로 해당 검사에게 다시 출석요구를 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성매매를 하고 경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검사는 있는데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다. 범죄자들에겐 정말 익명의 천국이다.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 샌와킨 카운티의 맥도날드 매장을 찾은 한 여성은 주문대에서 직원들에게 차 번호를 알려주면서 자신을 숨겨달라고 부탁했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온 여성은 다시 주문대에서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지만 그녀와 함께 들어왔던 남자는 승차 구매(drive-thru)를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여성은 차 안에서 주문을 하면서도 피해자는 직원들에게 입 모양으로 “도와달라”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서 남성을 체포한 샌와킨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은 페이스북에 상황설명과 함께 용의자 에두아르드 발렌수엘라의 얼굴 사진(mugshot)을 함께 올렸다. 

이 소식을 전하던 대한민국의 민영 뉴스통신사도 우리의 일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그 용의자의 얼굴 사진을 친절하게 실었다. 실소한 독자가 나 혼자뿐이었을까? 

유명해지고 싶다며 지하철에서 코로나19 감염자 행세를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제작한 20대 유튜버가 구속을 면하자마자 기고만장하게 “정의는 살아있다.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승리”라고 조롱하고 있지만 뉴스에서는 여전히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강모(23) 씨일 뿐이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그의 소원에 따라 신상을 공개해줄 만도 한데 헌법상 기본권, 무죄 추정의 원칙 등을 고려해서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단다. 

대구 서구보건소에서 감염예방업무 총괄을 맡고 있는 A는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을 보건당국 등에 숨긴 채 근무하다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확진 판정을 받은 구청 공무원 B는 자가 격리 통보를 받고도 주민센터를 찾았고, 간호사 C는 자가 격리 조치를 받고도 이 사실을 숨긴 채 4일 동안 병원에 출근했다고 한다.

감염병 예방법이 있으면 뭐하고 코로나3법을 급히 통과시킨들 무엇하리. 범죄자의 인권 타령을 반영한 대한민국의 코미디는 시즌을 이어가며 계속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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