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나온 벌레, 갓 자라는 풀이 상하지 않도록 들에 불을 놓지 말라”

시간은 상대적이다. 굳이 속도나 중력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물리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환경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도 다르다. 현대인은 일주일을 주기로 살아간다. 하지만 농부였던 우리 선조들의 시간 단위는 아마도 크게는 농사철과 농한기로, 작게는 24절기로 나뉘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그 유효성을 다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 시기, 도시 영토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 농토가 이리저리 자리하고 있는 춘천에서 과거 농사가 성행할 당시의 절기를 다시 되짚어보는 것은 오래된 미래를 찾는 의미 있는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편집자 주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이자 동지가 지난 지 74일 되는 3월 5일을 경칩이라고 부른다. 먼저 이름을 살펴보면 驚(놀랄 경)자에 蟄(겨울잠 자는 벌레 칩)자를 쓰는데 원래의 이름은 경칩이 아니었다. 중국 후한시대 역사가인 반고가 저술한 역사서 《한서》에 따르면 啓(열 계)자에 蟄(겨울잠 자는 벌레 칩)자를 써서 ‘계칩’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후 서한의 6대 황제의 자리에 오른 한경제의 이름이 유계(劉啓)였기 때문에 황제의 이름에 쓰인 ‘啓(열 계)’자를 피하기 위해 驚(놀랄 경)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계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칩이 지나면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 춘천의 농가들도 퇴비를 뿌리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경칩이 지나면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 춘천의 농가들도 퇴비를 뿌리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동면하던 동물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동의보감》에는 ‘동면하던 동물은 음력 정월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동면을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했다. 이처럼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릴 정도로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경칩을 맞아 선조들은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나 도롱뇽 알을 건져다 먹었다고 한다.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했다. 특히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했다. 또 고로쇠나무를 베어 그 수액을 마시기도 했다. 고로쇠 수액은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면 좋은 수액이 나오지 않고, 날이 맑아야만 수액이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 경칩이 지나서는 수액이 잘 나오지 않으며, 나오더라도 그 수액은 약효가 적다고 한다. 이처럼 경칩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절기이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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