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강원도청은 조선시대에는 춘천부 관아였다가 1896년 춘천이 강원도의 수부(首府)로 승격되면서 강원도관찰사가 근무하는 관찰부 기능을 맡게 되었다. 춘천부→춘천유수부→춘천관찰부→강원도관찰부→강원도청으로 명칭과 역할이 바뀌었지만 강원도를 관할하는 대표성을 현재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특히 조선의 고종 임금은 국왕의 임시피난처 목적의 이궁(離宮)을 춘천부 관아에 설치하도록 하여 유사시에는 임시수도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유서 깊은 곳인데, 그 역사성을 알려주는 건물 두 채가 현재 도청 좌측 모퉁이에 위아래로 나란히 서 있다. 바로 위봉문(威鳳門)과 조양루(朝陽樓)이다.

1961년 송요찬 내각수반의 춘천위봉문 시찰. 사진 제공=국가기록원
1961년 송요찬 내각수반의 춘천위봉문 시찰.       사진 제공=국가기록원

이 가운데 위봉문은 1646년 춘천부사 엄황(嚴愰)이 문소각(聞韶閣)을 건립할 때 부속건물로 함께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문소각이 임금의 침전 역할을 하게 될 이궁의 중심건물로 대폭 증수되자 위봉문은 문소각으로 통하는 내문(內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위봉문 전경. 사진 제공=춘천학연구소
위봉문 전경.      사진 제공=춘천학연구소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양루는 우두산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당하는데, 위봉문은 그보다 더한 고난을 겪게 된다. 조양루가 우두산으로 옮겨지자 위봉문은 조양루의 원위치로 이전되었다가 1955년 도청건물의 신축으로 인해 도청 뒤편(현 세종호텔 주차장 방향)으로 다시 이전되었다. 1972년 도청에 충무시설이 들어서자 다시 도청 앞 광장 부근인 공영빌딩(현 강원연구원) 옆으로 이전하였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1983년 또다시 2.5m 후방으로 이동하였다. 2013년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에 따라 예전 위치를 고증하여 조양루와 함께 강원도청 좌측 입구의 현위치로 이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봉문의 형태를 보면 전체적으로는 하나이나 세 개의 문으로 구성된 삼문(三門)의 구조와 가운데 문이 양쪽의 문보다 높게 솟아 있는 솟을대문의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런 이유로 솟을삼문 또는 소슬삼문이라고 부른다. 강원도 영서지방에 남아있는 내삼문 중 온전한 양식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란 점을 인정받아 1971년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위봉문이란 명칭은 춘천을 상징하는 봉황과 연관되어 명명된 것으로, 현판은 조선후기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명필 조윤형의 필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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