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여성의 날, 페미니즘을 돌아본다
[특집] 세계여성의 날, 페미니즘을 돌아본다
  • 홍석천 기자
  • 승인 2020.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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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1만5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시위에서 여성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빵은 저임금에 대한 개선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했다. 이 사건은 1세대 여성인권 운동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고 1920년 마침내 미국의 여성들도 참정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했고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여성인권 신장의 역사와 오늘날의 이슈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페미니즘이 뭐길래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여성인권 신장 운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며, 각각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로 불린다.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보통 68혁명 이전의 여성운동을 가리킨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동안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 등 법적인 권리를 요구했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이 생겼고 한국에서는 1948년 해방이후 첫 선거에서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됐다. 영국에서는 여성운동이 사회주의 사상과 만나면서 협동조합과 같은 대안 공동체를 통해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자본주의의 한계를 타파하려고 하기도 했었다.

제2의 물결은 68혁명 이후 80년대까지 이어진 페미니즘을 일컫는다. 이 시기의 페미니즘은 이전의 페미니즘 운동이 맥을 잇긴 하지만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보다 급진적인 성격을 띠면서 새롭게 등장한다. 이전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제도적으로 되찾는 ‘리버럴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면 여성의 차별을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까지 파헤치는 ‘래디컬(radical) 페미니즘’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향은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장 차이가 크다.

1914년 워싱턴 D.C.에서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며 시위하는 여성들.
1914년 워싱턴 D.C.에서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며 시위하는 여성들.

대표적으로 여성의 ‘성’을 들 수 있다. 어떤 여성 가수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과감하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공연을 펼쳤다고 가정하자. ‘리버럴 페미니즘’은 여성이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드러냈다고 판단하겠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남성중심 문화에 물든 결과라고 고개를 젓는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상충되어 갔다. 성별뿐만 아니라 사회적 계층이나 인종 등 다양한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분파와 입장의 차이는 정리하기 힘들 만큼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페미니즘 단체들은 페미니즘의 근간을 이루는 ‘평등’의 정신을 저버리고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몇몇 ‘리버럴 페미니즘’은 이러한 현대의 페미니즘의 복잡과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등주의’라는 용어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1990년대 이후 이처럼 매우 복잡해진 상황을 제3의 물결로 부르기도 한다.

 

 

젠더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페미니즘과 가장 가까운 용어중의 하나는 ‘젠더(gender)’라는 단어일 것이다. 젠더는 생물학적인 성(sex)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써 남성성과 여성성이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이다. 최근 이 젠더에 대해 두 가지 사건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부사관특성화학교를 졸업한 A 하사는 2017년 부사관으로 임명돼 기갑병과 전차승무 특기로 복무해왔다. 이후 성정체성을 깨닫고 심리상담 및 호르몬 치료를 받던 중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이후 A하사는 여군으로 계속 근무하기를 강력히 희망했으나 국방부는 심신장애자전역규정에 의거해 전역 처분을 결정했다. 그러나 WHO는 2018년 ‘국제질병분류’ 최신판을 공개하면서 약 30년 만에 트렌스젠더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성별불일치(Gender Incongruence)’ 항목을 정신장애가 아닌 ‘성적 건강 관련 상태(Conditions related to Sexual Health)’라는 범주로 옮긴바 있다. 영국, 스페인 등 19개국이 성전환자에게 군복무를 허락하고 있다. 국방부가 내세운 표면적인 근거도 성별전환 자체는 아니었다. 고환 적출이 심신장애 3급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관점은 A하사를 고환이 없는 남성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이미 성별정정까지 마친 A하사를 처음부터 여성으로 판단했다면 판단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젠더 이슈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B 씨가 10월 성별정정허가를 받고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최종 합격한 것이다. 숙명여대는 반으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인권 단체들이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여성인권 단체는 B 씨의 입학을 환영했지만 또 다른 23개 페미니즘 단체들은 생물학적인 여성만 여대에 입학해야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페미니즘 단체가 생물학적 성을 옹호하는 태도는 기존 페미니즘 운동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성과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이해와 수용이 여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페미니즘, 할 말 있습니다!

2017년 5월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여성으로서의 삶의 애환을 담은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하고, 2018년 2월 서지현 검사가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검찰 내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은 한국사회의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삶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관찰한 조남주 소설가의 《82년생 김지영》.
 

특히 이러한 남녀갈등의 중심에는 20대 청년층이 첨예한 대립 양상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남성우월주의는커녕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왔다’는 젊은 남성들과 ‘우리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젊은 여성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들 젊은 남녀의 입장 차이를 가상의 인물 ‘남학생 A’와 ‘여학생 B’의 대화로 정리해 본다.

남학생 A: 몇 년 전부터 극단적인 페미니즘 단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남성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면서 인권 운동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염려스럽기도 하고 남자로서 이유도 없이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기도 하다.

여학생 B: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을 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문제도 발생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에게는 아직도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남학생 A: 과거 어머니 시대의 여성들이 차별받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당연히 그런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20~30대에서는 남녀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국방의 의무 등 역차별적 요소가 있다.

여학생 B: 그렇지 않다. 가령 데이트 폭력 등 일상적인 범죄에 여성이 훨씬 많이 노출된다. 1년에 몇 십 명씩 가정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성폭력이나 성희롱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거의 무덤덤하게 인식할 정도로 만연해 있다.

남학생 A: 하지만 반대로 여성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무고한 남성들이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특히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증거가 없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렇다고 그런 사고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펜스 룰’을 적용하면 그것도 성차별이라고 한다. 지난해 한 여대에 출강하던 강사가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여대에 출강할 때는 바닥을 보고 걷는 편’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다음 학기 강의에서 배제됐다.

여학생 B: 어떤 판단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곰탕집 성추행’의 경우 명확한 증거가 찍히지 않았더라도 재판부가 다방면의 조사를 통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렸다. 특히 성추행이나 성희롱 범죄는 증거를 남기기 힘들다. 완벽한 증거를 가져와야지만 유죄가 된다면 반대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더 많은 여성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묻고 싶다.

남학생 A: 1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두 명의 희생자는 상관없다는 전체주의식 발상은 위험하다.

여학생 B: ‘전체의 이익’이라고 하지만 어떤 물질적인 이득을 바라는 게 아니다. 성범죄를 당하고도 입을 꾹 다물어야 했던 여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자는 것이다. 이것이 ‘미투’운동이다. 이를 전체주의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여성가족부 "성 평등 포용사회 만들겠다"

여성가족부(장관 이정옥)도 지난 5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정부서울청사에서 ‘성·세대 평등으로 함께 가는 포용 사회’를 주제로 2020년도 주요 업무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여성의 날 기념 포스터의 그림.
2020년 여성의 날 기념 포스터의 그림.

이 자리에서 여성가족부는 ‘평등과 안전, 상호 돌봄을 통한 포용 사회 발전’을 정책 목표로 3대 핵심과제를 ① ‘다양성 존중과 실질적 성·세대 평등 실현’ ② ‘여성·청소년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 구현’ ③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돌봄 환경 조성’으로 정했다면서 세부 과제들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성·세대 평등으로 함께 가는 포용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2020년도 주요 업무 계획은 다음과 같다.

① ‘다양성 존중과 실질적 성·세대 평등 실현’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 예산제도 내실화’, ‘고위직 대상 성인지 역량진단 시범 운영’, ‘교육·고용 등 분야별 중점 성평등 정책 이행과 성과관리 강화’, ‘여성의 경력단절 없는 일자리 지원을 위한 경력단절예방 문화 확산’ 등 추진.

② ‘여성·청소년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 구현’

‘아동·청소년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 및 양형기준 마련 추진’, ‘24시간 디지털 성범죄 피해영상물 검색 및 피해자 가족 삭제지원 요청 가능’, ‘성범죄자 신상정보 모바일 전자고지 제도와 아동청소년 성 착취 영상물 신고포상금 도입’,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신설 및 여성폭력방지 전담기구 운영’, ‘결혼이주여성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사례관리사 및 폭력피해 이주여성상담소 확대’ 등 추진.

③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돌봄 환경 조성’

‘1인 가구 사회관계망 지원 및 청소년부모 지원방안 모색’, ‘시설입소 미혼모와 자녀의 건강관리 강화 및 비양육부·모와 자녀 면접서비스 확대’, ‘아이 돌봄 서비스 앱을 활용한 간편 신청 및 사례관리인력 등 서비스 관리 강화’, ‘결혼이주여성의 자녀 학습 지도 역량 강화를 위한 한국어교육 운영’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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