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강원도신농정기획단 연구원)
이진천 (강원도신농정기획단 연구원)

춘천이 남북으로 나눠지는 줄 알았는데, 어? 북쪽 선거구가 아주 넓어졌다. 아침에 화천에 사는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살다보니 형과 내가 같은 지역구가 되었네요?” 

일단 재미있다. 춘천 동면에 사는 내가 화천과 철원의 선후배들과 정치적으로 정확히는 동일 선거구로 묶였다. 이번 선거구 획정에 분개하는 춘천시민사회단체의 공동성명에 공감한다. 

이게 뭔가?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선거구는 이름과는 달리 춘천시 유권자만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춘천·철원·화천·양구(을) 선거구는 춘천시 유권자와 이웃 군의 유권자의 의사가 다르게 표출되고 충돌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상황은 매우 낯설다.

이번 선거구 획정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유효인지 무효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차례의 획정 과정에서, 민주적 원칙에 실패한 날림과 졸속이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정치 실패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 나는 농업농촌을 주제로 칼럼을 쓰는 역할이므로, 시사점 하나가 포착된다. 오해받기 쉽겠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글 쓴 의도를 읽어 주시기를.

춘천시는 옛 춘성군과 통합된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다. 1995년 법률에 의거해 원주·강릉·삼척 등과 함께 도농복합도시 33개가 동시에 추진되었다. 법률에 명시된 목적은 “주민생활의 편의를 증진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함”이다.

당시의 시각으로도 도심과 주변 농촌지역 군이 불균형했으니, 법을 만들어 도농복합도시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도농통합적 지역개발접근법은 도농불이(都農不二)의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 당시 어느 연구자의 말이다.

25년이 지난 오늘 도농통합도시 춘천은 어떤가? 춘천 도심은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으나, 농촌지역은 철저하게 공동화되었다. 학교는 통합·폐교되고 농촌지역 공동체도, 활력도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통합 춘천의 복합적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은 실패했고 그래서 농촌은 아프다. 그나저나 균형은 뭐고 발전은 무엇인가? 너무 심오하니 다음에.

선거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춘천과 철원·화천·양구가 하나의 선거구가 되려나 보다. 선거구를 이렇게 획정한 사람들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구상 따위는 안했을 것이다. 그런 의도가 있었노라고 나중에 궁색한 핑계를 대겠지만.

이런 정치적 사정과는 별개로, 나는 재미있는 꿈을 꿔 본다. 춘천 시민이 화천의 젊은 농민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꿈꾸며, 양구에서 친환경농사 짓는 여성농민과 철원에서 쌀농사 짓는 늙은 농부와 악수하는 장면을 꿈꾼다. 물론 이따위 선거구 획정이 그런 꿈이 현실화되는 내일을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꿈을 꿔 본다. 

춘천 도심부 소비자들은 주변부 농업농촌에 참 많이도 무심했다. 요즘 로컬푸드가 알려지고 푸드플랜이 기획되면서 조금은 거리가 좁혀지는 듯하지만, 춘천 안에서도 도심과 농촌의 격차는 크다. 그러니 이웃 군의 농업농촌에 대해서는 더 큰 거리가 있다. 정치와 행정의 유리 벽이 있고, 도처에 관행과 습관이 있다. 협동과 연대는 산을 넘고 강을 넘기 어렵다.

춘천살이 13년 차다. 춘천을 사랑하지만 춘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화천 농민의 콩과 홍천 배추가 춘천의 로컬푸드이기를 내심 바라왔다. 철원 쌀과 양구 사과가 춘천의 지역먹거리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다 똑같이 힘겨운 농사를 짓는 이웃 농민들을 생각하면, 소비자로서의 춘천은 책임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 빨대효과를 비판하지만 정작 춘천도 이웃 지역을 빨아들인다. 춘천은 영서북부권 농업농촌과 공생하는 길을 성심성의껏 찾았던가? 물론 춘천의 농민들조차 제대로 챙기지 않은 춘천이니 질문 자체가 허망하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꿈꾼다. 춘천과 철원·화천·양구 그리고 홍천·인제의 농업농촌이 보게될 ‘균형발전’을 꿈꾼다. 선거구는 악수(惡手)일지언정 민초들은 진심으로 악수(握手)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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