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뒷사람의 이정표
[월요편지] 뒷사람의 이정표
  • 이충호 편집인
  • 승인 2020.03.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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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영입한 청년 인재를 둘러싼 잡음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지친 마음에 소음을 더하고 있다. 공천과 영입 과정에서 일으킨 영입 청년들의 크고 작은 논란에 대한 해명이나 대응이 하나같이 그동안 기성 정치권에서 지겹도록 봐왔던 과정을 따라갈 뿐 전혀 차별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역량이나 자질보다는 스토리나 상품성으로 유권자를 낚시질하려는 데자뷔에 그 어떤 신선한 환호도 들리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민주당은 TV 프로그램 ‘느낌표-눈을 떠요’ 코너에서 시각장애 어머니와 출연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원종건(28) 씨를 영입하며 “원 씨가 방송 출연 이후 각계 후원 의사를 모두 사양하고 어머니와 봉사활동과 선행을 펼치며 살아왔다”라고 그를 소개했다. 하지만 그의 전 여자 친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원 씨가 저를 지속적으로 성노리개 취급을 했고 가스 라이팅(gas lighting: 정서적 학대)으로 저를 괴롭혔다”라고 폭로하자 원 씨는 영입 인재 자격을 당에 반납하고 탈당했다. 

미래통합당은 김미균(35) 시지온 대표를 전략 공천했다가 곧장 철회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추석 선물을 받고 김 대표가 자신의 SNS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는 등 ‘문빠’여서 부적격자라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커지자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후보에 대한 추천을 철회하고 공관위원장직을 사직했다. 선물을 받으면 상대방의 이념이 내 이념과 같은지 여부를 먼저 따져서 고맙다는 말도 해야 할 만큼 양식의 수준은 막 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을 획득한 류호정(29) 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대리 게임 논란은 ‘정의’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비례대표 1번이라면 국회 입성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 1992년생인 류 후보가 당선될 경우 21대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지난 2014년 자신의 롤(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계정을 지인들에게 공유해 등급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롤 제작사가 2013년 대리 게임으로 논란을 빚은 아마추어 게이머 ‘압도’에게 ‘1천 년 계정 정지 처분’을 내렸을 만큼 롤 내에는 레벨과 랭킹이 중요해 유저들 간의 수준을 나누는 티어 제도를 두고 대리 게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왔다고 한다. 또한 작년 6월부터는 대리 게임 처벌법이 시행돼 계임계에서도 민감하게 다루는 사안인데도 “대리시험을 보다가 걸린 것”, “형이 동생의 축구경기에 와서 동생 등번호를 달고 게임을 뛰는 격” 혹은 “대리 게임은 그 자체로 반칙”이라는 선명한 분노를 진화하려고 당 지도부는 부단히 애를 쓴다.

새삼 휴정(서산대사, 1520-1604)의 글귀가 가슴에 따끔한 죽비 소리를 낸다.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에겐 이정표가 되리니.”

청춘이라서 아프다고 해야 할까? 계획적으로 사는 것도 피곤하고 무계획적으로 살기도 참 어려운 형국이다. 기성세대의 길을 따라가자니 불법이고 나의 길을 가자니 암흑이다. 밤새 내린 눈은 모든 길을 덮었고, 이른 아침 청춘은 길을 나서야 한다. 얼마쯤 갔을까, 뒤를 돌아보니 벌써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 무자비한 영속이다. 

85세 되던 해 정월, 휴정은 묘향산 원적암에서 자신의 영정 뒤에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그이구나’라는 글귀를 남기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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