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내 안엔 야생마가 산다. 1보 전진에 2보 퇴보가 주특기이고 궤도 이탈도 항다반사다. 하지만 나는 그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랑한 지 오래이다. 그가 매일같이 가르쳐주는 교훈은 하나, 인생은 즐기지 못하면 견뎌야 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셋이다. 

#양주의정강이털: “내 정강이의 털 한 올을 뽑아서 천하가 이롭다 할지라도 나는 내 정강이에 난 털 한 올을 뽑지 않겠다.” 도가 철학가 양주의 말이다. 이기주의자의 태도가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에게 양주의 제자가 부연한다. “털 한 올은 피부보다 작고, 피부는 사지 하나보다 작다. 그러나 많은 털을 모으면 피부만큼 중요하고, 많은 피부를 합하면 사지만큼 중요하다. 털 한 올은 본래 몸의 만분의 일 중 하나인데 어찌 가벼이 여길 것인가?” 

피부 같은 조직도, 사지 같은 국가도 털 한 올인 개인으로 이루어진다. 내 털 한 올을 뽑더라도 나의 뜻이 아니라 어떤 외적인 관계망에서 오는 유무형의 압력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 이로움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사라질 것임을 꿰뚫는 말이다. 개인의 행복감이 없는 사회의 발전, 국가의 풍요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시한폭탄은 언제나 개인의 자발성을 뭉갠 바로 그곳에 설치되어 째깍째깍 움직인다. 

#펭귄의팃포탯: 시속 100㎞가 넘는 눈보라와 영하 50도의 극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펭귄들은 서로의 몸을 최대한 밀착시켜 거대한 덩어리를 이룬다. 바깥쪽에 있는 동료가 차례로 무리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들어오며 공평하게 열을 나눈다. 규칙을 깨고 계속 안쪽에만 머무르려는 동료는 여지없이 무리에서 쫓겨난다. 

이러한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은 사회관계망 속에서 입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처로 인해 자기 환멸이나 절망에 빠지는 걸 막아준다. 원칙은 간단하다. 처음에는 무조건 협력하고 내가 먼저 상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상대방이 협력을 하면 협력하고, 배반을 하면 가차 없이 보복을 한다. 맹목적 낙관을 취하지 않는다. 상대가 보복을 받은 후 협력을 해 오면 다시 기꺼이 협력한다. 시기하지 않는다. 가끔씩 지는 게임에 연연하지 않고 궁극적 성취를 노린다.

#소크라테스의변론: “하지만 (나를 고소한)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그들이 미덕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싶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안겨준 것과 똑같은 고통을 내 아이들에게 안겨줌으로써 복수하여 주십시오. 그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닌데도 젠체한다면, 내가 여러분을 나무랐듯이, 내 아이들을 나무라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나도, 내 아들들도 여러분에게 정당한 대접을 받는 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플라톤이 전해준 소크라테스의 최후 진술이다. 그 진술을 뒤로하고 그는 독배를 받기 위해 시민법정을 나섰다.

이번에도 나는 내 정강이의 털을 뽑지 않았고, 게임에는 졌다. 하지만 나는 야금야금 갉아먹히는 삶, 환경에 질질 끌려가는 삶이 싫었을 뿐이다. 그런 사회와 나 사이로 쓸쓸함과 공허함, 욕망과 도피가 안개처럼 내린다. 세상은 또다시 내게 고약하다는 딱지를 붙이겠지만 나는 스물셋의 치기를 버릴 생각이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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