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시인)
금시아(시인)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김정수 시인. 나는 시 <망대>를 읽으면서 시인이 무척 궁금했다. 곧 <망대>가 실린 시집 《하늘로 가는 혀》를 샀고 인터넷도 뒤졌다. 시인은 언제 망대를 다녀갔을까? 어떻게 망대의 소소한 내막까지 저렇게 꿰뚫고 있는 것일까? 도심 한가운데 가파른 골목이 있고 겨우 두 사람이 비켜 오를 수 있는 계단 그 끝에 망대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고즈넉한 약사동 골목 풍경이 시공간적 배경이 되는 시인의 <망대>를 촘촘히 따라가 보자. 문득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날’ 시인은 춘천을 찾았을 테고 역사와 일상이 공존하는 골목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탁 트인 망대의 외로운 고독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때 망대는 시인에게 정말 아늑하고 따듯한 등받이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시 <망대>에는 섬세한,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하는 시인의 눈이 엿보인다. 주변과 상황을 보는 시인의 생각은 자상하고 따듯하다. 정겨움이 가득하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세상 아픔들, 무심히 짓밟고 버려둔 외면을 발견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잊히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깊은 관심과 배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나리 활짝 피어 눈부신 날, 결국 나는 망대에 다시 올랐다. 언제인지 까마득한 날에 올랐던 망대는 변함없었지만 언덕에서 바라본 도심의 사방 풍경은 무척 달라져 낯설기까지 했다. 지역재개발사업으로 인해 동네의 한쪽 어깨가 가파르게 잘려 나갔는가 하면 위태로운 한 채의 고집이 있었다. 게다가 즐비한 고층 건물로 인해 망대는 제 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망대'-김정수

작은 기척에 옆집 개가 망대지기처럼 컹컹 짖는다. 소리를 잃은 망대 스피커도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린다. “쉿! 지금 망보는 중입니다. 변신 후 돌아올게요.”, 앙증맞은 시청 안내판을 달고 망대는 긴 목을 내밀고 있었다.   

한때 한수산, 박수근, 권진규 등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늙은 골목, 듬성듬성 제비꽃이 피어 있다. 사자 문고리에 노끈이 수갑처럼 꽁꽁 묶여 있는 폐가의 깨진 기왓장 틈새로 낮도깨비들이 드나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공간을 건너듯 봄꽃들이 월담하는 계단을 느릿느릿 내려왔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날에는 춘천’에 올 일이다. 언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망대’와 ‘기대 슈퍼’가 서로 닮아가듯, 묵묵히 홀로 사유하는 망대에 기어이 올라볼 일이다. <망대>로 가는 길, ‘점점 좁아져 사람이 되어’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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