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봉문(威鳳門)과 더불어 강원도청 자리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건물이 조양루(朝陽樓)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에 누각 아래로 삼문(三門)을 낸 전형적인 문루(門樓)의 형태로,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최초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1890년 춘천관아에 이궁(離宮)을 설치할 때 함께 건립되어 이궁의 문루로 사용된 것은 확실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원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었으나, 지형이 좁고 춘천읍이 너무 번잡하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1938년 우두산에 강제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삼문 형태의 출입문과 판벽이 모두 제거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부가 훼손되었다. 이후 몇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2013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우두산에 있었던 조양루      출처=춘천문화원

20세기에 지어진 『수춘지』에는 우두산으로 이전된 조양루의 현판 글씨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민영휘의 양자로 입적하였던 민형식이 어린 시절에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수춘지』 이외의 다른 기록에서는 확인이 되지 않기에 누구의 필적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처럼 현판 글씨를 누가 썼는지 불분명한 점과 현판이 건물에 비해 너무 작다는 점을 감안해 조양루를 현 위치로 옮기면서 현판을 새롭게 제작하였다. 기존 현판의 형태와 유래를 알려주는 유일한 기록은 신위(申緯)가 춘천부사로 근무하면서 남긴 한시이다. 이 시를 토대로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친 끝에 국왕인 고종과 처음 조양문의 현판을 쓴 것으로 기록된 조윤형, 춘천부사 신위 세 사람의 필적에서 집자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고종과 조윤형의 필적에서는 동일한 글자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신위가 쓴 해서천자문의 글씨를 집자하여 복각하였다.

현재의 조양루       출처= 춘천문화원

  조양(朝陽)은 글자 그대로 새벽에 처음 떠오르는 태양을 가리키는 말로, 새롭게 흥성하거나 발전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봉황이 해가 뜨는 동쪽 언덕에서 운다는 의미의 ‘봉명조양(鳳鳴朝陽)’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춘천의 상징인 봉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평성대에만 출현한다는 전설상의 새인 봉황과 관련된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위대한 성군이나 현인이 출현하여 평화로운 시절이 열리기를 갈망했던 당시 춘천인들의 소망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흔히 요순시절이라고 일컫는 태평성대는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다소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정치적 혼란함 또는 경제적 어려움은 어느 시대나 그러하였다. 성군이나 현인의 출현을 바랄 수 없다면 최소한 ‘사회적 거리두기’란 생소한 용어라도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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