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문화비평가)
이정배(문화비평가)

일본의 아까운 감독 이치카와 준의 영화 《토니 타키타니》(2004)에서 남자주인공 토니가 여자 주인공 에이코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 “그녀는 마치 먼 세계로 날아가는 새가 특별한 바람을 몸에 두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옷을 입고 있었다.” 그 후 그녀는 토니의 사무실에 몇 번 들려서 일러스트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그리곤 어느 날 토니는 그녀와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말을 건넨다. “나는 당신처럼 옷 입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왠지 옷이란 게, 나 자신 내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라고 답한다. 마치 토니가 그림에 빠져 미술도구를 사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그녀는 월급 대부분을 옷을 사는데 써버린다. 

토니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친구가 그녀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는다. 토니는 답한다. “그녀는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여자 같아.”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731벌의 옷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텅 비어버린 듯한 드레스룸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토니의 모습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감동을 일으킨다. 옷은 다름 아닌 바로 그녀였다. 

인간 삶의 기본 요소인 의(衣), 식(食), 주(住) 중에서 인간다움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옷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옷을 입지 않는다. 동물은 옷을 입지 않고 몸의 모든 부분을 드러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 옷을 입게 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영화에서 옷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신분을 알려주기 위한 것과 옷 입은 사람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깊게 들여다보면 옷은 입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옷의 색상은 현재 심리적 상태를 표현해준다. 특히 겉옷은 남을 대하는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고, 속옷은 내면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옷 또는 패션과 관련된 영화는 주로 패션계의 유명인을 조명하는 영화들이 많다. 《이브 생 로랑》(2014), 《코코 샤넬》(2009), 《마드모아젤C》(2013), 《디올 앤 아이》(2014) 등의 영화가 그러하다. 패션계의 악마로 불리는 보그 USA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다룬 다큐 《셉템버 이슈》(2009)와 그녀를 극화로 다룬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도 흥미로운 영화이다. 

한편 옷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호주 영화 《드레스 메이커》(2015)나 조선 시대 왕실 의복을 만들던 공간을 다룬 영화 《상의원(尙衣院)》(2014),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가난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나 세계적인 모델이 된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데저트 플라워》(2009)도 의미 있다. 

런던의 1950년대 의상디자인업계를 다룬 영화 《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2017)에는 어머니, 바바라 로즈, 프랑스 공주 등 세 벌의 드레스가 등장한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옷이 소유자의 존재를 의미하고 나아가 영혼을 상징한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은 자의 옷을 지붕에서 흔들거나 태우는 일은 영혼을 하늘로 고이 보내려는 의례라는 걸 유추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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