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면 의암리 잊혀진 다리

1939년 경춘철도가 생기기 이전에는 서울에서 춘천으로 들어오는 길은 대략 두 갈래였다. 서울에서 배를 타고 북한강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거나,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두 다리에 의지하여 뚜벅뚜벅 걷는 것이다. 걷다 보면 큰 난관에 봉착하는데 마석고개, 가평고개, 석파령이 준엄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석파령을 넘어도 한고비가 남아있는데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한 큰 강줄기가 가로막고 있어 나루에서 배를 타지 않으면 건널 수 없었다. 춘천사람들은 이 강을 옛날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 군민이 마중 나왔다고 하여 신연강(新淵江·新延江)이라 불렀다.

(왼쪽) 1933년 신연교 출처=동아일보, (오른쪽) 1968년 신연교 출처=국가기록원     

서울과 춘천은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3일을 꼬박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서울~춘천 간 신작로가 건설되고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신작로 건설로 꼬박 3일이 걸렸던 길이 10시간으로 짧아졌다. 그러나 신작로가 닦였지만, 신연강에는 길을 놓을 수 없었으니 다리 건설이 요구되었다. 1928년 12월 15일 교량 건설 기공식이 열렸다. 다리 이름은 강 이름을 따와서 신연교(新延橋)라 하였다. 1년 8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30년 7월에 준공되었는데 와렌트러스(Warren truss) 공법으로 시공되었다. 상부 모양이 각진 아치와 같았고 철교 초입에 화려한 편액도 달렸다. 총 길이는 252m, 폭은 5m, 높이는 수면으로부터 20m였다. 당시 조선에서 건설된 가장 높은 철교였다. 신연교가 건설되고 서울~춘천은 4시간 거리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근대 문물은 편리만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전시효과로 이 다리를 이용했다.

광복 후 신연교는 의암댐 건설과 함께 보강되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됐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다리는 1980년 6월에 건설됐다.

의암댐이 담수를 시작하고 도도히 흐르던 강은 호수가 되었고, 신연강과 신연교의 이름은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곳에 머물며 찬찬히 들여다보면, 신연강의 이름을 품은 신연교가 여전히 건재하게 서 있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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