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내 대형마트 진열 향토물품, 유통비 탓에 가격거품 잔뜩
내 고장 산물 직거래 플랫폼 만들면, 생산자·소비자 모두 이익

세상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창구가 너무도 많다. 대형마트, 개인마트, 요즘에는 인터넷마트도 성업 중이다. 이밖에도 친환경 제품만 취급하는 마트, 지역 농가를 살리기 위한 마트, 어린이전용마트 같은 대안적 마트들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에 동참하여 대안 판매처 만들기에 두 팔을 걷어붙인 시민이 있다. 올해 2월 14일에 태어난 ‘봄내다살이’의 원신숙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도대체 무슨 물건을 누구에게 팔려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일을 벌여놓은 걸까? 궁금증을 묻기 위해 찾아갔다.

'봄내다살이'가 주관으로 화요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춘천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이 시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Q. 대표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죄송한데, ‘봄내다살이’라는 이름부터 생소합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아직 만든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그럴 거예요. 지난 2월 14일이 생일이니 이제 꼭 두 달 됐네요.

Q. 저는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는 카톡 메시지를 보고 ‘봄내다살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친환경농가가 학교 급식용으로 재배한 감자, 양파, 당근을 싸게 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봄내다살이’는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인가요?

아니에요. 지역 농산물도 판매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입니다. ‘봄내다살이’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겠네요. 저는 원래 ‘소양강버섯’이라는 브랜드의 버섯을 생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춘천향토기업발전협의회’ 소속으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지금도 부회장이고요. ‘춘천향토기업발전협의회’에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을 생산하는 향토기업들이 들어와 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정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 발견 때문에 버섯 생산을 그만두고 ‘봄내다살이’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인생행로를 바꾸게 한 이상한 발견이라니 그게 뭔가요?

춘천에서 만든 물건이 전국 어디로든 배송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품질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정작 춘천시민들은 춘천 지역 생산물의 우수성을 모르고 있더라고요. 판매도 잘 안되고. 그래서 제가 거의 3년 동안 조사를 했어요.

Q.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죠?

생각해 보세요. 춘천 시민들도 주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삽니다. 그런데 대형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춘천이라는 향토색은 거의 사라집니다. 대형마트가 진열해 놓은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지요. 잠깐! 이런 말하면 ‘지역 물건을 팔아주고 도와주자는 이야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내 고장 물건을 사는 게 소비자에게도 훨씬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바로 유통비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품질의 감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타 지역의 산물이고, 하나는 춘천 감자입니다. 어디가 싸야 할까요?

Q. 아무래도 운송비 때문에 춘천 산이 싸겠죠?

'봄내다살이’ 원신숙 대표
'봄내다살이’ 원신숙 대표

네. 단순하게 계산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춘천 감자가 대형마트를 통해서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면 유통비가 붙어서 다른 지역 감자와 값이 비슷해지는 거죠. 춘천의 대형마트에서 팔리는 타 지역 감자야 유통비만큼 값이 비싸지는 게 당연하지만, 춘천 감자가 유통비 때문에  춘천 대형마트에서 비싸게 팔리는 건 이상하죠. 요컨대, 내 고장 춘천 물품을 춘천에서 판매할 때만큼은 자체적인 유통구조와 판매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내 고장 물품을 사고팔면 또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Q. 또 뭐죠?

구매자들의 정보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춘천 시민이 춘천 물건을 사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물건의 품질이 떨어져서? 타 지역 물건을 특별히 선호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조사해보니 대부분 잘 ‘몰라서’ 못 삽니다. 물건의 종류도 모르고, 어디서 사야 하는 지도 몰라요. 쉽게 살 수 있고, 품질도 좋고, 좀 더 저렴하다면, 그 물건 안 살 이유가 없지요.

다시 말해 구매자들은 바로 이웃이 좋은 물건을 만드는데도 ‘몰라서’ 멀리서 가져온 물건을 비싸게 사야하고, 생산자는 바로 옆에 살 사람이 있는데도 ‘몰라서’ 멀리 떨어진 타 지역으로 물건을 보내는 실정입니다.

Q. 아하, 이제 감 잡았어요. 마치 예전에 중고물품을 살 때 ‘중고**’을 통해 타 지역 사람과 택배로 물건을 주고받았다면, 이제 비슷한 품질이면 ‘당*마켓’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중고 물품을 살 수 있는 것과 비슷하군요.

네 맞아요. 그런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훨씬 편리하고, 택배비만 따져 봐도 조금이나마 저렴하게 사고 팔 수 있잖아요.

Q. 솔깃한 제안이네요. 그럼 이번에 농산물을 판매하게 된 것은?

사실 원래 목표는 지금껏 말씀드린 대로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결하는 ‘상설 마켓’ 같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에요. 야외에서 오프라인 상설 마켓을 열면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교류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진정한 시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물론 이 계획은 앞으로 진행할 겁니다. 다만 이번에 농산물 판매를 급작스럽게 시작한 까닭은 코로나19로 농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춘천의 농가들은 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친환경 인증 농산물을 학교 급식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학교급식이 중단 되면서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Q.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른데,  새로운 판매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판매처도 구할 수 없는 역설적 상황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아이들이 바로 학교로 돌아오고 급식도 다시 해야 하잖아요? 그 때 식재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언제 급식을 시작하더라도 차질이 없도록 충분한 양의 농산물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양이 많아지는데, 오래된 식재료는 어느 시점에는 팔아야만 하거든요. 그걸 저렴하게 판매하는 창구를 만들면 농민은 재고를 줄이고, 시민들은 친환경 농산물을 싸게 사 먹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셈입니다.

시민들에게 농산물에 대해 설명하는 원신숙 대표(왼쪽 위)
 

Q. 우리 집에선 제가 주로 장을 보는데, 봄내다살이에서 파는 농산물은 정말 싸더군요. 감자, 양파는 1kg에 1천200원, 당근은 1kg에 2천200원 하던데, 남는 게 있나요?

아시네요(웃음). 실은 제가 꿈꾸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이익 없이 농민과 시민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플랫폼의 효용성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되면 그때 인건비라도 책정해야겠지요. 

Q.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다행스럽게도 ‘가히 폭발적이다’ 할 만큼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십니다. 현재 터미널 앞 ‘강원춘천소비자연맹’ 건물 앞에서 판매를 하는데요. 처음에는 지역 농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배달까지 했는데 수요가 너무 많아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바람에 배달은 안 하기로 했습니다.

판매도 화요일 목요일 이틀만, 그것도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딱 세 시간만 하는데 그 세 시간동안 600kg씩 팔립니다. 필요한 만큼 가지고 나오는데 금세 동이 납니다. ‘강원춘천소비자연맹’ 측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면을 새삼 통해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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