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산 중턱의 강원도청, 서면 방동리의 신숭겸 묘역, 우둣벌 한쪽에 솟아 있는 우두산, 북산면 물로리의 한천자묘. 이들의 공통점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명당이란 점이다. 춘천엔 예로부터 중앙에서 힘깨나 쓰던 인물들의 무덤이 많았다. 소양강, 북한강과 아기자기한 산들이 조화를 이룬 배산임수의 지형에 더해 서울에서 수로를 통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서면 안보리에 있는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묫자리다.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의 왕비이자 숙종의 모친이 명성왕후인데, 이 명성왕후의 아버지가 바로 김우명이다.

청풍부원군 김우명 묘 전경(왼쪽), 무덤에서 바라본 북한강 방향 (오른쪽)
청풍부원군 김우명 묘 전경(왼쪽), 무덤에서 바라본 북한강 방향(오른쪽)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우명이 세상을 떠나자 외손자인 숙종이 명당으로 알려진 춘천의 신남 부근에 묘터를 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우명의 시신을 실은 배가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올라오던 도중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더니 명정이 바람에 날려갔다고 한다. 부랴부랴 배에서 내려 명정을 찾아갔더니 현재 묘역이 조성된 곳에 명정이 떨어져 있었고, 그곳이 천혜의 명당자리라고 지관이 알려주어 묘역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춘천의 전설로 굳어져 현재 춘천 관련 각종 기록물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얼마나 사실과 차이가 있을까? 사실에 근거해 추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청풍김씨 집안은 충청도 충주에 세거하다가 혼인과 과거를 통해 점차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되면서 북한강 유역인 경기도 양주에 터를 잡게 된다. 이 집안의 선산도 양주 금촌리에 조성되었다. 김우명의 부인은 은진송씨인데, 김우명이 세상을 떠나기 17년 전에 운명하였고 양주 선산에 장사지냈다. 그런데 무덤이 너무 얕아 드러난다고 하여 새로운 묫자리를 물색하다가 현 묫자리로 이장하였다. 새롭게 묫자리를 조성하면서 김우명은 무덤의 오른쪽 자리를 자신의 자리로 비워두라고 명하였고, 세상을 떠나자 그곳에 장사를 지낸 것이다. 김우명의 부친인 김육이 10여 년간 경기도 가평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인근 춘천에도 그 집안의 전장(田莊)을 조성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1976년 6월 17일 강원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된 묘역에는 신도비와 숙종의 어필묘비가 있고, 망주석, 문인석 한 쌍과 석등이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묘역에서 바라보이는 북한강의 시원한 물줄기가 이곳이 범상치 않은 자리임을 느끼게 한다. 잔인한 4월, 강물 줄기와 함께 나쁜 일들도 싹 씻겨 나가길 간절히 기원하며 되돌아섰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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