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옥(인문치료사)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우리에게 선택은 삶의 방향과 행복에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나오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세 변화를 통해 지금 나의 선택의 위치를 성찰해 보려한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에게는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더 없이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그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낙타의 단계는 선택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해야만 하고, 이 짐을 져야만 한다’라고 이야기하며 이유도 모르는 짐을 지고 사막을 걸어간다. 노예 상태인 자신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명령하는 주인이라고 여기는 대상, 즉 어떤 권위자의 말, 사상, 도덕적 기준 등을 내 자유의지보다 더 높이며 낙타처럼 그 짐들을 지고 묵묵히 걸어간다. 그 짐을 왜 지고 가느냐고 물으면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그 짐을 지는 것이 맞다고 외부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짐을 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감과 무력감에 빠진다. 이제는 더 이상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때 자신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 사자의 정신이 필요하다.

형제들이여,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에 대해서조차도 신성하게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자가 필요하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처음으로 자신의 무거운 짐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아마도 그는 두려울 것이다. 이 짐을 자발적으로 벗는다면 그는 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낙타는 드디어 자유에 기반한 선택을 하고 사자가 된다. 그러나 방금 사자가 된 사람은 용기는 있으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기보다는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승자가 되려 한다. 아직은 두렵기 때문에 사자갈기와 발톱을 세우는 으르렁거림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내 등에 내가 원치 않는 짐을 얹으려 한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온몸에 힘을 주며 살아간다. 이제 이 긴장과 으르렁거림을 내려놓고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며 삶을 선택하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어린아이는 현재의 세계를 왜곡하지 않는다. 으르렁거림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 속에서 현재의 삶을 즐기며 몰두한다. 목표를 세우고 놀이를 하기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고 망각한다. 어린아이들은 친구와 다투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즐거운 놀이로 돌아온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놀이에 집중하고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면 그 일이 계속 신경 쓰이고 투쟁하게 돼 현재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어린아이는 삶을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을 억지고 이루려 하거나 자신의 삶에 힘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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