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매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북한강을 끼고 가다 보면 밭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석탑이 하나 보인다. 석탑이 위치한 마을 이름(춘천시 서면 서상리)을 따서 ‘서상리삼층석탑’이라 불린다. 엄황이 편찬한 《춘천읍지》와 일제 강점기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에는 양화사(楊花寺)라는 절이 서면 서상리 양화(楊花) 언덕에 있었는데 절은 사라지고 석탑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양화사지삼층석탑’이라고도 불린다. 1971년 12월 16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안정된 모습을 갖춘 석탑으로, 탑신이 기울어져 지난 1980년에 해체 복원했다.

일제강점기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오른쪽)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현재 주변에 절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탑만이 홀로 남아 옛 절터를 지키고 있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높이 3.2m의 석탑으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정확한 형태를 알기 어렵지만 2층 기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 면석은 네 개로 구성되어 있고, 모퉁이 기둥인 우주(隅柱) 이외에 조각장식은 없다. 중앙에는 둥근 2단의 굄이 있어 탑신부(塔身部)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돌 하나로 되어 있다. 탑신은 1층에서 높다가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어 다소 균형을 잃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탑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목조건물의 구조를 본떠서 제작한다. 탑신의 지붕 역할을 하는 돌을 옥개석이라 하는데, 목조건물에서 처마끝을 위로 치켜 올라가게 만든 것과 같이 옥개석의 끝부분도 위로 올라간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끝부분이 위로 올라간 정도를 반전(反轉)이라고 하는데, 석탑에서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바로 반전이다. 반전의 형태를 띤 옥개석의 숫자를 가지고 몇 층 석탑인지 명명하는 것이다. 또한 탑의 건축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는데, 반전이 약하면 초기의 탑으로 추정하고 반전이 심하면 후기의 탑으로 추정한다. 이 석탑은 반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밋밋하다. 목조건물의 서까래를 응용하여 옥개석에 조각한 것을 옥개받침이라 하는데, 이 석탑의 경우 1층과 3층은 5단이고 2층은 6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머리 장식 받침인 노반석(露盤石)이 있는데 1980년에 석탑을 해체하면서 세종호텔에 옮겨졌던 것을 원위치로 돌려놓았다고 한다. 3층 옥개석 윗면까지 찰주(擦柱)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전체적인 구조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일직선에 가깝게 줄어드는 체감율과 큰 돌을 그대로 다듬어 옥신과 옥개를 하나로 조각한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탑으로 추정된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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