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문화유산 얼마나 알까?] 춘천향교
[춘천 문화유산 얼마나 알까?] 춘천향교
  • 춘천학연구소
  • 승인 2020.05.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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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역사책에서 익히 배웠듯이 서울의 성균관과 각 지방의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교육기관에 해당한다. 그 중에 향교는 고려시대에 설치되기 시작하여 유교를 국시(國是)로 한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다. 최근에 건립된 동해향교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233개의 향교가 아직까지 존재하며 이 가운데 강원도에는 모두 16개의 향교가 남아 있다고 한다.

춘천향교 전경       출처=강원도청

원천석(元天錫)이 1365년에 지은 한시에 춘주향교(春州鄕校)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춘천의 향교는 고려말엽인 14세기 초중반에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렸고 이후 춘천에 부임한 여러 부사들에 의해 중건되었다. 6·25 동란을 겪으며 다시 파괴되었고 1960년에 복구된 이래 지속적인 중수와 개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5년 전통방식으로 담장을 개축하였고 주위에 철책을 설치하였으며, 그 해 1월 17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유교 성현에 대한 제향(祭享)과 유학의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춘천향교도 향교의 정형적인 구조에 따라 앞쪽에 강학공간, 뒤쪽에 제향공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강학공간은 강의실이라고 할 수 있는 명륜당(明倫堂)과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장수루(藏修樓)로 구성되어 있고, 내삼문을 통해 들어가는 제향공간은 공자의 위패를 봉안한 대성전(大成殿)과 공자 이외 중국과 우리나라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봉안한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공자를 비롯한 모든 성현의 위패를 대성전(大成殿)에 봉안하고 동무와 서무는 집기류를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 단을 설치하고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사실을 계승하여 심은 오래된 은행나무와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를 비롯하여 엄황(嚴惶), 지계사(池繼泗), 장헌근(張憲根)의 업적을 기록한 몇 기의 비석도 세워져 있다.

춘천향교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그 아래에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타고는 향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음을 알리는 비석이다.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학을 교육하는 향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외부와 단절된 신성한 공간이자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표시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춘천향교는 주변 도로 확장으로 인해 담벼락마저 헐린 채 일 년에 두 번 거행되는 석전제(釋奠祭:공자에 대한 제의)를 제외하면 적막만이 감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라는 관념 아래 문화재로서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조류에 맞춰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인지에 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다.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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