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 삼거리 ‘보보스’

강대 삼거리 대로변에 ‘보보스’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남성전용 미용실이 있다. 아주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다 한 주의 대부분은 무거운 셔터가 굳게 내려 앉아 있다. 그래서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체 영업을 하긴 하는 건가 의문을 품게 된다. 참 수상한 미용실이다. 

'보보스'의 외관

“끝까지 읽어 봐 주시고 혹시 일정이 변경 될 수 있으니 오시기전에 한 번 더 봐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일 수요일 오후 5시 ~ 오후 7시 / 9일 토요일  오전 11시 ~ 오후 1시 /11일  월요일 오후  5시 ~ 오후 7시 

미용실 끝 날 시간에 오시면 저도 그 시간에 출근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꼭 최소 끝나기 20분전까지 와주세요. 늦게 오셔서 기분 나빠 하시고 가시는 데 지켜주실 건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양해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보보스’ 이샘보 사장이 지난주 네이버밴드에 올린 미용실 운영 시간표와 당부의 말이다.

이 원장은 매주 이렇게 문 여는 시간을 알린다. 왜 이렇게 운영을 할까? 이렇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건가? 이 사장을 만나 사정을 들어보았다.

 

미용실이 트럭의 짐 칸 만큼 작네요. 문도 자주 열지 않는데, 커트 값이 6천 원이라니, 수상쩍은 점이 많습니다. 우선 헤어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군대에 다녀온 23살 무렵 직업을 구하고 있었는데, 당시 미용 일을 하던 누나가 이 일을 권했어요. 호기심이 생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미용학원에 등록했죠. 원래 손재주가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고 재미도 많이 느꼈어요. 학원을 수료하고 춘천의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기왕 하는 거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고 싶어져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999년부터 서울 잠원동과 이대 같은 화려한 동네의 크고 유명한 헤어샵에서 일했어요. 아시겠지만 그 동네가 정말 바빠요. 제시간에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배운 게 많은 시간이었죠.

 

왜 다시 춘천으로 돌아왔나요?

어머니가 건강이 많이 약해지셔서 돌봐드려야 했어요. 그게 서른 무렵인데, 아버님도 안계시고 혼자 계시니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서 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내 미용실을 열자 생각했죠. 그러다 2008년 무렵 지금 자리에 ‘보보스’를 열었습니다. 올해로 12년 됐네요.

 

‘보보스’는 정말 작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렇죠? 커트하는 미용의자 두 개와 한쪽 구석의 좁은 샴푸 공간이 전부예요.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은 가게 입구 옆에 놓인 작은 의자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기다리던가, 그게 불편하면 밖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원래 제 가게를 차리면 작은 가게에서 혼자 일하려 생각했어요. 

이샘보 사장이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손님에게 커트를 하고 있다.

바라던 미용실을 열었는데 운영도 바램대로 잘 됐나요?  

아주 잘됐어요. 2008년부터 몇 년 간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어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쉴 틈이 없었죠. 염색처럼 손 많이 가는 일은 하지 않고 커트만 했어요. 주로 강원대 남학생들이 많이 왔고, 근처 주민들 중 성인 남성들도 많이 왔어요. 한 사람 커트하는 동안 다른 손님은 옆자리에서 대기하고, 또 다른 손님은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그런 흐름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반복됐어요. 

단골도 많았어요. 가게가 좁아서 물리적 거리가 쉽게 무너져서 그런지 마음도 빨리 열리고, 속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그랬죠.

 

그렇게 잘되던 미용실 운영을 지금처럼 바꾼 이유는...?

대학가 상권이 많이 위축된 탓이죠. 예전에는 여기 강대정문 삼거리 주변에 학생들이 많이 살았는데, 시설 좋은 기숙사가 생기면서 학생들 수가 많이 줄었어요. 또 고속도로와 전철이 개통되면서 통학하는 학생이 늘어서 손님이 정말 많이 줄었어요.

상권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미용실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투잡을 결심했습니다. 미용기술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으니 손에서 놓지 않고 틈틈이 이어가면서 새로운 직장을 얻기로 한 거죠.

그게 가능한 직장을 찾다가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홍천의 기계설비·유지점검 전문회사에 입사했습니다. 40대들어서 새로운 도전인데 손재주가 좋은 탓인지 금방 익숙해졌어요. 회사는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니까 시간 배분을 잘하면 일주일에 2~3번씩 2시간 정도 미용실을 열 수 있어요. 네이버밴드에 문 여는 시간을 알리면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한 번 열면 15명 안팎으로 오는데 2시간 정도 정신없이 커트를 하고 다시 홍천으로 출근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요. 한주가 하루 같아요.

‘보보스’는 강대 삼거리 길 가에 자리한 작은 미용실이다.

커트 비 6천 원 받아서 생활에 보탬이 되나요? 

큰 도움 안 되죠. 말한 것처럼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기술이니까 녹슬지 않으려고 이어가는 거고, 얼마 남지 않은 단골손님들 잃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여전히 문 여는 날 확인하고 찾아와주는 분들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종종 호기심에 찾아오시는 새로운 단골 맞는 재미도 있고요. 그냥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살려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도 머리를 맡겼다. 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금방 커트가 완성됐다.

가격은 6천 원이지만 가성비는 만족스러웠다. 서울과 춘천 두 곳을 오가며 갈고닦은 그의 솜씨 덕이다.

“지금처럼 한 주에 2~3번 2시간씩 일하며 6천 원 받는 식으로 계속 운영할 겁니다. 궁금한 분들은 밴드에서 문 여는 시간 확인하시고 한 번 오세요. 잘 깎아드릴게요.” 이 말과 함께 이 사장은 거스름돈을 건넸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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