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춘천의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다리는 소양1교가 유일했다. 전후 군사작전 및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교량 건설이 요구되었고 당시 참전국으로 도움을 주었던 미 육군의 62공병대대가 현재 소양2교 자리에 교량을 건설했다. 1951년 7월 8일에 착공하여 8월 1일까지 단기간(25일)에 완공된 573m의 나무다리로 교량 이름은 ‘포니 브리지(FORNEY BRIDGE)’라 명명했다. 1950년 11월 29일에 청천강 전투에서 숨진 미 19공병단 포니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이름 지어진 것이다. 

좌측은 1954년 포니브리지(출처=강원도청 홈페이지). 우측은 1967년 소양2교 준공식
(출처=국가기록원)

그러나 교량이 제 역할을 담당하기도 전에 1954년 9월 대홍수가 덮쳤고 교량은 순식간에 유실되었다. 홍수가 물러나고 보수작업이 즉시 이루어졌는데 11월 15일 육군 제209 건설공병대 2중대에서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5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1955년 4월 18일 제1야전군 사령관 백선엽, 강원도지사 최헌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거행되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일까 1956년 9월 태풍 엠마가 한반도를 집어삼키고 포니교는 또다시 유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1958년이 되어서야 복구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7만8천 달러 상당의 외국 자재가 들어오고 연인원 4만8천194명이 동원되는 대대적인 공사였다. 제1103 야전공병단 제108대대가 중심이 되어 공사를 진행한 끝에 착공 4개월 만인 1958년 8월 14일 최석 제1군 부사령관 등 군관민이 참여한 가운데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1960년 초반까지 포니교는 춘천의 강북사람과 강남사람을 이어주었다. 그러나 나무다리는 낡아 ‘썩은 다리’로 불릴 만큼 노후화되었다. 그리하여 튼튼한 교량이 세워지게 된다. 1964년 5월 미8군 제1103 야전공병단의 자재를 지원받아 2차선의 콘크리트 교량을 건설해 1967년 4월 27일 준공했다. 교량 이름도 포니교에서 소양2교로 개명했다.

1990년대 들어 강북과 강남의 교통량이 증가하여 더 넓은 교량이 요구되었고 2차 신축 계획이 수립되었다. 교량 모양은 아치 형태의 쌍둥이 다리로 계획되었는데 1995년 10월 길이 510m, 폭 17.5m 규모의 3차선으로 1차 교량이 완공되었다. 이어서 1997년 12월 30일 1차 교량과 똑 닮은 2차 교량도 완공되어 6차선(폭 35m)의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07년 춘천시에서는 시민 3천467명의 의견을 반영해 춘천 8경을 선정했다. 소양2교도 포함되었는데 이는 아름다움도 한몫을 했겠지만, 춘천시민의 애환이 그곳에 담겼기 때문이리라.

춘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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