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춘천은 시민이 주인인 도시라 하더라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걸까? 아니다. 춘천시청 홈페이지 ‘통하는 시장실’ 이재수 시장님 인사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가장 편한 이웃같이 늘 소통하고 겸손하고 만만한 시장이 되겠습니다. 춘천의 주인이신 춘천시민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즐겁고 유쾌하고 발랄한 변화, 시민이 주체되는 시민정부를 구현하겠습니다.” 

제목은 위와 같은 시장님 말씀에 힘입었을 뿐이다. 아무리 겁을 상실하고 철이 모자라더라도, 시장님이 만만하다는 표현을 신문 지면에 함부로 쓸 강심장은 못된다. 

국어사전은 ‘만만하다’의 뜻을 ‘부담스럽거나 무서울 것이 없어 쉽게 대할 만하다’라고 풀고 있다. 아마도 시장님의 말씀의 본 뜻은 “저를 너무 부담스러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요”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리고 ‘만만한’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어휘를 공적 발언에 차용한 까닭은, ‘탈권위시대’로 함께 나아가자는 강한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시장님은 권위주의를 무척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나름 소탈한 편이라고 알고 있다. 특히 관료적 권위주의의 폐단에 대한 거부반응이 강하다고 들었다. ‘시민이 주인입니다’라는 선언도 그런 맥락에서 도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권위주의를 배격한들, 지방정부 수장에게는 매우 막강한 권력이 존재한다.

권(權)이라는 글자는 저울의 의미를 담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곧, 무게를 저울질하는 이치와 같다. 어떤 일의 경중을 판단하는 힘이 권력이고 권세다. 바른 권력이란 가벼운 일은 가볍게, 무거운 일은 무겁게 저울질하는 능력과 힘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정치는 항시 신중하게 무게를 재라는 경계의 뜻으로 근권량(謹權量)이라는 말을 남겼다. 

본론이다. 나는 공자도 아니고 시장님 윗사람도 아니므로, 점잖게 정치와 권력의 요체를 가르칠 입장은 아니다. 내가 시장님께 바라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소소한 요청이다. “시장님의 저울질에 담긴 생각을 좀 알고 싶습니다.”

시청 홈페이지에는, ‘시민과 소통을 위한 발걸음: 이재수 시장의 현장뉴스’가 있다. 시장님 동정을 다루는 코너다. 사진과 함께 발언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인용) 이재수 시장은 춘천시 노사민정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다. 이 시장은 “노동자를 예우하는 춘천시 조성을 위해 노사 화합·상생에 힘쓰고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 보호에 적극 힘쓰겠다”고 말했다. 

여러 뉴스는 전체적으로 메시지가 너무 짧고 의미가 축약되어 있다. 그러면 다른 곳에서는 시장님의 충분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까? 일의 경중을 어떤 맥락으로 파악하시는지를 말이다. 나는 잘 못 찾겠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시대정신을 확인하는 슬로건과 시장님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주인 된 시민들에게 저울질을 맡기겠다는 일관된 정치적 태도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자치가 경중을 재는 모든 일에 적용될 수는 없다. 

2년 전 시민들이 시장을 선택한 것은, 시장님이 저울질을 잘 할 것이라는 바람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나은 권력행사를 기대한 것이었다. 시장이라는 자리는 춘천의 숱한 사안들의 경중을 매일 매시간 저울질하는 자리일 것이다. 이미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저울질로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시민들은 주인으로서, 선거를 통해 시장님에게 저울을 건네주며 권력을 위임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바빠서 100가지 저울질에 대한 100가지 생각을 다 들을 시간이 없다. 정치적 권력의 위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아주 무거운 저울질에 대해서는 시장님이 저울질할 때의 생각을 더 알고 싶고 특별히 궁금한 것이 당연하다. 도드라지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시장님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싶고, 주인이므로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 

지연되는 농민수당에 대해서, 버스의 파행에 대해서, 학교 앞 고층건물 신축 등에 대해서 생각을 듣고 싶은 것이다. “이번 저울질은 꽤 무거운데 저울질은 타당한가?” 주인의 질문이다. 

결론이다. 급하게 저울질할 이유 없다. 춘천시민들은 인내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시장님의 홀로 답을 내려는 마음과 시민을 주인으로 섬기려는 마음 사이에서, 시민들은 때때로 혼란스럽다. 그러므로 시민들과 당사자들은 시장님의 저울질과 그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차분히 소통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면, 해법이 영 마뜩지 않고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 모두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도 시장님도 다 아는 길이 임기 하반기에는 활짝 열리기를.

“그렇군요. 더 알아보고 다시 신중하게 저울질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풀어가는 시장님은 부담스럽지도 무섭지도 않은 만만한 시장님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감히 만만하게 여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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