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탄리 숲지기)

산꼭대기까지 쫓겨 올라간 전설의 나물들 좇아 골짜기를 오르면 옛 집터가 나타나고 근처엔 땀방울과 눈물방울 풀잎 위에 맺힌 화전이 나타난다. 허물어져가는 돌담 뒤엔 늙은 밤나무가 침침한 눈, 굽은 허리로 서 있고 굶주림과 병고로 살았던 사람들의 짓무른 눈가처럼 샘터가 아직도 그리움에 젖어 있는 듯하다. 무너져 흩어진 돌담 근처엔 그때 꽃뱀이 살고 소쩍새 소리에 쓰러진 경월 소주 병이 있고 산딸기가 재잘대고 있고 아직도 5살인 앙증맞은 아가 신이 낙엽에 묻혀있다.

모시 저고리 냄새나는 그 많던 모시대 나물, 누이 냄새나는 참나물은 보이질 않고 개불알꽃 요강 꽃은 어디 갔나. 있었을 자리만 가슴 내려앉은 자린 듯 허전하고 주위의 나무들은 무성해져 집터를 가리고 있다.

사람들은 숲을 떠나고 고향을 떠나 어디로 갔을까? 나무도 풀들도 떠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새들도 봄이면 돌아오는데. 할머니 떡시루 놓고 소원 빌던 늙은 바위 아직도 떠난 이들을 기다리고 토종벌 놓았던 넓적 돌 그냥 있는데 사람들만 떠나가 보이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다.

먹는 나물인가 독 나물인가 알려 주던 옛길 그대로 있고 목숨 길이던 화전 밭 경사진 그 길 오르던 벅찬 숨결은 바람 소리 따라 들려오는 듯하고 아무리 역한 냄새 나는 세상이라도 잎 냄새, 풀 향기, 용서처럼 그대로이고 아름드리나무에 묻혀 가는 무덤도 봄이면 봄…, 여름 가을 새들 소리 다 듣고 있는데.

잎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계곡의 물소리, 잎 스치는 바람 소리 그대로 아직도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빈 고향 숲속을 홀로 매일 걷는 발길 하나 있다. 산딸기와 까치 수영 꽃 앞을 서성이고 매일 풀잎 꽃 향이 물드는 행복한 한 사나이가 대신 돌아와 고향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50~60년 전보다 더 생생히 풀려나오는 새소리 들으며 돌밭을 일구려 여기저기 모아둔 돌무더기와 돌덩이에 묻은 땀방울과 휘어진 허리의 통증과 오직 먹고만 사는 희망 하나만 있었을 삶과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에 비하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고 백만장자 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과 같이 살면서도 더한 욕망과 갈등과 애증으로 살고 정신적인 공허증을 앓으며 사는 지금을 반성해본다. 대체 무엇이 참된 삶이고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아무리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고 늘 산인 산을 생각한다. 묵묵히 용서하듯 포용해 주는 산을 생각 한다. 잊고 잊어도 산에만 가면 다시 살 길과 갈 길을 말해 주는 산, 그 품속을 매일 걸으면서도 망각증 환자처럼 잊고만 사는 삶을 돌아본다, 영원히 살길인 숲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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