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대 (‘교육과나눔’ 이사장)

다음은 2019년 4월 30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의 일부이다. 기사제목은 ‘삼성 손잡은 문재인 정부…재벌 중심 성장 회귀하나’이다. 기사내용의 일부를 인용하면 “문재인 정부와 삼성이 손을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 처음으로 삼성전자 국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시스템반도체를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소득주도 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온 문재인 정부가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으로 본격 회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사회의 경제분야에서 대표적인 과잉의 예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자신 있게 재벌이라고 응답할 것이다. 과잉의 뜻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찾아보면 ‘예정하거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은 상태’라고 나온다. 즉 예정에 없이 그리고 불필요하게 많은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왜 대한민국 재벌의 현재 모습을 ‘예정에 없이’ 그리고 ‘불필요하게’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이는 한국 재벌의 성장의 역사, 주로는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독재 시기에서 벌어졌던 재벌에 대한 특혜 때문이다. 즉 재벌에 대한 특혜가 없었다면 현재 대한민국 재벌의 과잉의 양태는 줄어들었거나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독자들의 우려(삼성과 현대, LG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뭐 먹고 살고 있을까?)가 있을 수 있으나, 이 글은 순전히 필자 본인의 생각이므로 너그럽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필자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그 위 세대는 소위 ‘삼백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필자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박정희는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 2년이 조금 넘어서이다. 그런데 1964년 1월 15일 제6대 국회 임시회에서 삼분폭리사건(삼분을 삼백이라고도 불렀는데,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이 분말이기도 하고 하얀색에 가까워서 붙여진 이름으로 판단된다)이 정치쟁점화 된다. 그 이유는 1963년 전국에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 소위 삼분의 사재기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사재기 열풍이 분 이유는 밀가루의 경우 외국에서 들여온 원맥을 배정받은 10여 개 제분업체들이 원맥을 가공해 출고하면서 고시가격의 3배까지 올려받았기 때문이다. 독점시장이 형성되었던 설탕과 밀가루 역시 고시가격의 3~4배에 달하는 폭리가격으로 판매되었다. 이를 두고 당시 야당인 삼민회 대표 박순천 의원은 “군사정부와 현 정부에서는 정치자금의 조달을 위해 몇 사람의 삼분, 삼백재벌에게 특혜를 주어 치부케 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삼백사건의 진위여부는 가려지지 못했다. 야당이 특위 구성을 제안했으나 여당인 공화당의 불응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생정당이었던 공화당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세간에 퍼졌고, 그 후 대선이나 총선에서 유세장에 나가 고무신이나 막걸리를 얻어먹고 표를 찍었다는 세평이 공공연히 회자되었다. 삼백사건에서 독재정권과 기업의 유착이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근거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정권과 재벌의 유착관계는 더 심화되었을 것이라 본다. 왜냐면 정권과 재벌 양측 모두 부당하지만 막대한 이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하는 법이다. 

가장 최근의 정권과 재벌의 비리합작품은 ‘차떼기사건’이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법률고문이었던 서정우 변호사가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에서 LG그룹으로부터 현금 150억 원이 실린 현대 마이티 2.5톤 차량을 통째로 건네받아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려고 대선비리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새천년민주당이 SK그룹으로부터 25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는데, 더 파다보니 차떼기까지 드러났다. 당시 한나라당이 제 무덤 제가 판 경우였다. 물론 삼성도 300억 원, 현대 100억 원, SK도 100억 원대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 SK는 승용차로, 현대는 스타렉스 승합차로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했다. 

생필품을 비싸게 팔아 부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그 대가로 재벌은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 선거를 위해 불법정치자금을 차떼기로 제공해주는 재벌에게 어찌 특혜가 없을 수 있겠는가? 없었다면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인지상정의 결과가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재용은 여전히 감옥에 가지 않았고 재벌총수들은 금액도 엄청난 각종 비리와 횡령, 배임 등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에서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고 있다. 그리고 재벌의 곳간에는 사내유보금(물론 사내유보금이 전부 현금이 아니라는 사실과 부당하게 축적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알고 있다)이 1천조 원 가깝게 쌓여있다. 이것이 바로 ‘예정에 없고’, ‘불필요한’ 과잉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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